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사찰문건이 공개되면서 불법사찰 및 증거인멸 사건의 여파가 총리실, 청와대를 거쳐 정점에 있는 이명박 대통령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정치권의 정략적 공세는 별개로 하더라도, 현재 최대의 관심사는 이 대통령이 과연 불법사찰을 알았는지 여부다. 이번에 공개된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사찰문건에 적시된 'BH(청와대) 하명' 사건 및 사찰을 당한 당사자, 그리고 사찰 결과에 대한 내용이 도대체 BH의 어느 선으로부터 지시를 받았고 어느 선까지 보고가 됐는가 하는 것이다.
청와대에서는 대통령은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사찰을 통해 얻은 내용을 일일이 보고 받을 만큼 한가하지 않은 자리라면서 방어막을 치고 있다. 하지만 사찰 대상자를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조현오 경찰청장, 윤여표 전 식품의약품안전청장, 장수만 전 국방부 차관, 류철호 전 한국도로공사 사장 등은 모두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필요한 정부부처와 공기업의 책임자들이다.
이들의 평소 업무행태와 비위 여부는 이 대통령이 임면권을 행사하는 데 있어 반드시 필요한 정보들이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생산한 보고서의 최종 소비자는 이 대통령일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복무동향 보고서 양식에 '단순한 사건 설명에 그치지 말고, 구체적 상황과 대상자의 역할에 대해 본인(작성자)이 대통령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기술'하라고 돼 있는 것은 이런 추정을 뒷받침한다.
특히 정권 초기인 2008년 사찰 대상에 올랐던 이세웅 전 대한적십자사 총재, 김문식 전 국가시험원장, 박규완 전 소방검정공사 감사 등은 전 정권 때 임명된 인사들로 물갈이 차원에서 청와대에서 사찰 지시가 내려온 것이라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청와대 측은 공직윤리지원관실 업무범위에 공직자 복무 관리가 포함돼 있기 때문에 이 대통령이 관련 보고를 받았더라도 문제될 것이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불법사찰이 아니라 하더라도 전 정권 인사들을 대상으로 한 집중적인 비위 감시가 이뤄진 만큼 그들에 대한 인사권자인 이 대통령이 몰랐을 리 없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설치 배경과 시기, 보고 라인을 보면 이 대통령의 인지 문제는 단순한 가능성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이 조직은 이 대통령이 집권하자마자 촛불집회로 인해 큰 타격을 받은 직후인 2008년 7월 '반정권 세력 색출, 반정권 여론 사전 차단' 목적으로 출범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촛불집회 자금원으로 오인을 당해 집중 사찰을 받았던 김종익 전 KB한마음 대표의 경우는 물론, 이번에 공개된 문건들 중 'BH 하명'으로 적시된 'KBS, YTN, MBC 임원진 교체 방향 보고' 문건도 이를 반증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청와대 민정수석실을 거치는 정식 보고 라인 외에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에게 비선으로 보고했다는 점도 석연치 않다. 정상 보고체계를 거치면 안 되는 민감한 내용을 이 전 비서관이 이 대통령에게 보고했을 것이라는 의혹이 그래서 나온다. 이 전 비서관은 수시로 이 대통령에게 직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 개입설을 터뜨린 장진수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은 "나와 관련된 내용이 VIP에게 보고됐다는 말을 들었다"고 폭로한 바 있다.
향후 검찰 수사나, 정치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특검 혹은 특별수사본부의 이 사건 수사가 이 대통령의 법적 책임 유무까지 다룰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하지만 이 대통령이 '국기 문란 사건'으로까지 지적되고 있는 이번 사건에 대한 도덕적 책임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권지윤기자 legend8169@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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