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 소설가 조명숙(54)씨가 세 번째 단편집 <댄싱 맘> (산지니 발행)을 펴냈다. 두 번째 단편집 <나의 얄미운 발렌타인> (2005) 이후 발표한 단편 10여편 중 7편을 추렸다. 이 기간 조씨는 여성 화가의 그림에서 영감을 얻거나 구상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썼다. 그런 만큼 각각의 에피그램에 언급된 그림과 더불어 작품을 감상해볼 필요가 있겠다.(책에는 도판이 실려 있지 않다) 나의> 댄싱>
수록작 여러 편엔 버림받거나 고립된 인물이 등장한다. 표제작은 까탈스러운 성격 탓에 네 자녀에게까지 회피 대상이 된 한지공예가의 쓸쓸한 죽음을 그린다. 그 무렵 치매 증상을 보이던 그녀는 (작중 화자인) 막내딸에게 "내가 어디 있는 거니?"라고 절박하게 묻는 전화를 마지막으로 실종됐다가 죽은 지 석 달 만에 자신이 만든 뒤주 속에서 발견된다. 여고 시절 급우들에게 괴롭힘 당하며 나쁜 짓을 사주 받다가 범법자에 이르고 만 영주('어깨의 발견'), 대학 시절 남다른 정신과 재능으로 동료들의 추종을 받다가 사고로 불구가 되어 비참한 말로를 겪는 남자 에이('거꾸로 가는 버스') 역시 처지가 다를 바 없다.
이들 작품 모두 주인공의 곤경에 직간접적으로 책임이 있는 인물을 화자로 삼는다. '어깨의 발견'의 화자와 그 친구들은 영주를 괴롭혔던 장본인들. 영주가 넝마주이가 됐다는 불분명한 목격담을 접한 이들은 생업까지 제쳐두고 그녀의 행방을 찾는 것으로 오래된 죄책감을 달래려 든다. '거꾸로 가는 버스'의 화자는 에이의 추종자이자 한때 연인이었다가 그가 나락으로 떨어지자 애써 외면한다. 갑작스러운 에이의 부고를 듣고 빈소에 간 화자는 그를 버렸거나 심지어 그의 불행한 처지를 돈벌이에 이용한 옛 동료들을 만나 무언의 공범자 의식을 나눈다. 표제작 화자의 언니는 어머니의 고독사 앞에서 예전의 냉담함과 어울리지 않는 눈물을 흘려 독자를 아연하게 한다.
연루자들의 애도 행위에서 진정성을 느끼기 힘들수록, 주인공들의 고통과 상처는 더욱 생생히 다가온다. 그것은 습관적 어깨 탈골(영주), 하반신 마비(에이) 등 불구의 몸을 통해 상징적이고도 극적으로 드러난다. 조씨는 "몸을 기형적으로 표현하는 여성 화가들의 인물화를 보면서 상처를 드러내는 소설적 방식들을 고민했다"고 말했다.
'바람꽃'과 '비비'는 이 소설집의 또다른 계열로 읽힌다. 이들 작품엔 비일상적인 행동을 하는 젊은 여성이 등장한다. 전자의 그녀는 치매에 걸려 아무 교차로에서나 호루라기를 부는 (주인공의 아버지인) 전직 군인을 아무 인연도 없으면서 자청해서 돌보고, 후자의 그녀는 평범한 회사원인 주인공에게 유유히 접근해 비밀스러운 만남을 이어가다가 느닷없이 그의 직장에 비비탄 총을 난사한다.
신비한 분위기의 그녀들은 소시민인 주인공들의 현실 감각을 뒤흔들고 각박한 현실의 '바깥'을 열어준다. 조명숙 식의 판타지랄까. "그녀와의 만남은 내 삶을 예상치 않는 방향으로 이동시켜버렸으나, 나는 내게 주어진 새로운 길을 걸어갈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었다."('비비'에서)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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