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3, 4월이면 한국과 일본의 외교가에는 긴장감이 감돈다. 독도는 일본 영토이고 일본은 위안부 문제에 책임이 없다는 내용의 교과서가 대거 통과되고, 또 독도의 영유권 주장을 명기한 외무성의 외교청서 등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우리 외교부는 주한 일본대사관 간부를 불러 정식 항의하고, 주일 한국대사관도 일본 외무성에 시정을 촉구한다.
올해도 이런 패턴은 조금도 변함이 없다. 지난달 27일 일본 문부과학성이 발표한 고교 교과서 검정에서 독도의 일본 영유권을 주장하는 교과서가 이전보다 늘어난 것으로 확인되자 우리 정부는 주한 일본총괄공사를 초치, 강력 항의했다. 6일 예정된 외교청서가 발표되면 유사한 절차가 이어질 것이다.
연례행사처럼 돼버린 이 문제를 놓고 우리 정부가 형식적인 절차에 치중하는 동안 일본 우익세력은 역사왜곡 교과서 보급을 오랜 기간 주도면밀하게 진행시켜왔다. "종군 위안부는 허구"라는 망언을 일삼는 일본의 대표적 우익 정치가 아베 신조(安倍晉二)는 자신이 총리로 재직하던 2006년 국민의 애국심 교육강화라는 명목으로 교육기본법을 개정, 역사왜곡의 틀을 마련했다. 문부과학성은 이를 근거로 중학교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와 고교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다케시마(竹島ㆍ독도의 일본식 명칭)를 둘러싸고 양국간 주장에 차이가 있다는 점을 이해시키라"는 내용을 담았다. 이전까지 독도 관련 내용을 싣지 않았던 교과서를 제작하는 출판사들도 이 해설서에 근거, 독도의 영유권을 새롭게 주장하기 시작했다.
문부과학성 검정을 통한 교과서 왜곡은 빙산의 일각이다. 일선 지자체에서도 역사왜곡 교과서는 쉽게 발견된다. 보수우익 세력의 대표주자인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가 지사로 재직중인 도쿄도가 대표적이다.
도쿄도가 이번 학기부터 공립고교를 상대로 채택한 일본사 교과서 에는 "다케시마는 일본 고유의 영토지만 현재 한국이 불법점거하고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번에 문부과학성 검정을 거친 교과서들이 "한국과 영토 분쟁을 빚고 있다"고 표기한 것과 비교해도 강도가 훨씬 세다. 지자체에서 발행하는 교과서는 문부과학성을 검정을 받지 않기 때문에 표현이 거칠어질 개연성이 높다.
이 교과서에는 또 2차대전 당시 일본의 침략 전쟁에 대해 "연합국의 경제봉쇄에 몰린 일본이 주로 자위상의 이유로 전쟁을 선택했다"는 더글러스 맥아더 연합군 사령관의 발언을 실었다. 하지만 맥아더가 침략전쟁의 당사자인 일왕과 손을 잡고 일본에 전쟁의 면죄부를 줬다는 견해에 대한 내용은 적지 않아 또 다른 형태의 역사 왜곡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우익세력은 자신의 의견과 맞지 않는 교과서에 대해서는 소송도 서슴지 않는다. 후쿠오카(福岡)현의 우익성향 의사 3명은 최근 교육위원회를 상대로 중학교 공민교과서의 채택을 취소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일본 국적을 갖지 않으면 선거권과 공무원 자격에 제한을 받는다"는 해당 교과서의 재일한국인 참정권 문제에 대해 "이는 일본만의 사례가 아닌 만큼 차별이 아니다"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우익세력의 역사왜곡이 조직적으로 이어지자 우리 정부의 대응자세도 많이 달라졌다. 문제의 항목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물론 철저한 연구 분석을 통해 왜곡된 논리를 조목조목 반박하려는 노력이 보인다. 감정적인 대응으로는 오랜 기간 축적해온 왜곡된 논리를 깰 수 없다는 것을 뒤늦게나마 깨달은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한창만 도쿄특파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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