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돌, 낙엽, 나뭇가지 등 자연에서 재료를 얻는 조각가 이재효(47)씨의 작품에선 풀 내음이 난다. 바스락거리는 낙엽을 여러 가닥의 줄에 길게 묶어 복도처럼 만든 공간에 들어서면 가을 숲길을 걷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나뭇가지를 여름 햇살을 차단하는 발처럼 묶어 내린 작업에선 한적한 시골 길의 서정이 느껴지고, 키를 달리해 비스듬히 잘라낸 나무 속살에 물결마냥 홈을 판 작품은 오래 눈길을 붙든다.
이씨의 20년 작품 세계를 조명한 전시 '자연을 탐(探)하다'가 5월 27일까지 서울 신문로2가 성곡미술관에서 열린다. 성곡미술관의 중견ㆍ중진 작가 시리즈 전시로, 이씨가 1991년부터 2012년까지 작업한 드로잉, 조각 소품, 설치 작업 등 300여점이 망라됐다.
수많은 작품 중 나무를 집적해 지구본처럼 둥글게 깎아 만든 거대한 나무 조각은 이씨의 대표작. 주운 밤나무, 잣나무, 낙엽송의 분홍빛 속살에선 자연의 따스한 입김이 흐른다. 완성 후 열흘간 열기에 쪄내 매끄러운 미감을 더한 그의 작품은 잘 팔린다. 작품 활동을 시작하고 5년간은 한 점도 팔지 못했지만 그 후론 꾸준히 시장 반응이 좋아 지난해부터 작품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갤러리 전시를 접었다.
"너무 상업적으로 가는 거 같아서 한 템포 쉬어가기로 했지요. 때마침 미술관 전시 제안을 받고 바로 응했어요. 대학 4학년 때부터 했던 작업까지 모두 가지고 나왔죠. 보통 전시는 하루 이틀 만에 설치가 끝나지만 이번 전시는 닷새나 걸렸어요. 지금껏 걸어온 과정을 총체적으로 선보이는 자리입니다."
신작인 돌 작업도 추가됐다. 경기 양평의 작업실 부근 강변에서 주워온 매끈한 돌들을 한 가운데 큰 돌을 놓고 바깥으로 갈수록 크기가 작아지게 둥글게 말아놓은 작품은 거대한 달팽이 집 형상이다. "묵직한 돌에 반전을 주고 싶었다"며 울퉁불퉁한 돌들을 기다란 철사 줄에 줄줄이 매달은 작품 역시 원통형이다. 다수의 대작이 원형인 이유에 대해 이씨는 "재료에 알맞은 형태를 찾을 뿐 거창한 메시지는 없다"고 말했다. "자연스럽게 얻은 형태지만 잡다한 이유와 제 생각을 빼면 결국 마지막에 남는 것이 바로 구의 형태가 아닐까 싶어요. 내 생각을 배제한다는 건 누구나 공감할 수 있게 열려있다는 것과도 맞닿지요."
땅에 떨어지고 말라 비틀어져 눈길조차 가지 않는 자연물과 고물, 때론 쓰임이 다한 일상의 물건은 그의 손끝에서 새 생명을 얻는다. 놀이하듯 간단한 도구와 손만으로 연금술을 펼치는 그의 솜씨와 유머에 감탄하게 하는 조각 소품은 특히 흥미롭다. 양 끝을 깎은 색연필 벽장식, 타다 남은 담배꽁초, 녹슨 부탄가스통, 돌돌 말은 낙엽, 수건으로 만든 물고기, 낡은 성경책을 이용한 종이 조각, 국화 형상의 숯 등 사소한 사물을 파내고 묶어내 빼어난 조형미를 가진 조각품을 완성했다. 산등성이와 수십 개의 열리고 닫힌 창문 형상, 소담스런 꽃 등, 종이 한 장과 칼날 하나로 만든 여러 장의 입체적 드로잉은 상상력의 한계를 짐작하기 어렵게 한다. 입장료 5,000원. (02)737-7650
이인선기자 kel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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