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책과세상/ '20세기 진보 언론의 영웅, 이지 스톤 평전' 권력의 입술은 말한다…전쟁은 정의, 탄압은 질서라고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책과세상/ '20세기 진보 언론의 영웅, 이지 스톤 평전' 권력의 입술은 말한다…전쟁은 정의, 탄압은 질서라고

입력
2012.03.30 12:39
0 0

20세기 진보 언론의 영웅, 이지 스톤 평전/모든 정부는 거짓말을 한다/마이라 맥피어슨 지음·이광일 옮김/문학동네 발행·888쪽·3만6,000원

"국가는 악이다." 사회주의와 개인주의, 최근에는 생태ㆍ환경주의와 맞물려 업그레이드되고 있는 아나키즘이 전하는 메시지의 골간은 결국 이것이다. 탐사보도 기자의 맏형이자 20세기 진보 언론의 영웅으로 추앙 받는 이지 스톤의 두터운 평전이 택한 제목은 그러나 무정부주의에 대한 찬사가 아니다. 국가라는 권력 기구에 맞서 평생을 싸운 한 반골에 대한 멋진 헌사다.

"숱이 많은 검은색 곱슬머리에 포동포동한 뺨에는 깊은 보조개가 팼"(56쪽)던 소년이 1인 독립 주간 신문 'I. F. 스톤 위클리'를 창간, 무소의 뿔처럼 살았던 81년이 담겨져 있다. 4쪽 짜리 신문이 어떻게 미국의 현대사를 바꿨는지가 방대한 분량으로 서술됐다. 자본가의 재산을 악으로 규정, 소유를 근본적으로 부정한 19세기 무정부주의자 프루동이 살아서 봤더라면 얼마나 반가워했을까 싶을 정도다.

역사의 진보를 논하며 불과 14세에 신문 '진보'를 창간했으니 그의 미래는 예고돼 있었던 셈이다. 진실을 담은 자신의 기사가 외면당하자, 다니던 신문사를 박차고 나오면서 구체화되기 시작한 일이다. 거침없는 비판, 과격한 논조의 이 1면짜리 독립 신문은 이내 FBI의 요주의 대상이었다.

대공황과 스페인 내전, 2차 세계 대전 등 굵직한 결절점을 혈혈단신의 오기로 관통해 나간 스톤을 읽는다는 것은 곧 현대사의 최전선과 충돌하는 일이기도 하다. 언론의 중립성이란 그에게 꽃노래일 뿐이었다. 밖으로는 베트남전, 안으로는 인종 차별이 던진 여파의 한복판에 섰던 스톤에게는 1970년 미국의 자연 보호주의자들이 제정한 지구의 날(Earth Day)마저도 위선이었다. "젊은이들이 더 시급한 관심사에 대해 흥미를 잃게 하려는 감언이설"(693쪽)이란 이유에서였다.

책에 등장하는 몇몇 인물들은 미디어 개론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진다. 냉전이란 말을 만든 언론의 제왕 월터 리프먼이 좋은 예다. 광야의 예언자를 자처하며 영원한 아웃사이더로 남았던 스톤과 리프먼을 서술하는 대목은 언론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권력자들과 친분을 유지해 확고한 영향력을 행사한 리프먼과 결코 권력에 길들여지지 않은 스톤의 대비는 언론을 넘어 인간 그 자체에 대한 통찰의 계기를 제공한다.

강인구 펜실베니아주립대 언론학 교수의 말마따나 "편한 자를 불편하게 만들고, 불편한 자를 편안하게 만드는 일이 언론의 사명"이라면 스톤의 생애는 그 명제를 구현하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책이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 쏟아진 찬사들 가운데는 감정 과잉의 것도 드물지 않다. 남가주대 저널리즘스쿨 마틴 카플란 교수는 "언론이 요즘처럼 간신(奸臣)이 되기 전에 어떻게 살았는지 알고 싶다면 이 책을 보라"며 격문에 가까운 평을 썼다. 허울좋은 인터넷 시대, 참언론이 그만큼 야위어 있다는 말이다.

워싱턴 포스트 정치부 기자 출신의 작가가 2006년 쓴 이 책은 문자 그대로 언론인에 의한, 언론인의 책이다. "현대의 고전이자 젊은 기자들의 필독서"라는 평을 받은 이 책은 오늘도 불온한 꿈을 당당히 전파하고 있다. 그러나 신문 기자 출신의 전문 번역가 이광일씨의 문장에 살아 있는 속도와 감각은 이 책이 결국 일반 독자를 위한 미디어학이라는 점을 말하고 있다.

장병욱 선임기자 aj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