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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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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표절

입력
2012.03.30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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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剽竊)의 사전적 의미는 '시나 글 노래 등 다른 사람의 창작물 일부 또는 전부를 몰래 가져와 마치 자신의 것인 양 발표하는 행위'다. 남의 것을 흉내 내는 모방이나 비트는 패러디, 의도적으로 존경을 표하는 오마주 등과는 흔히 구별되지만, 깊이 따지고 들면 형식적 경계는 애매해진다. 결국 행위자의 주관적 인식과 수용자가 갖게 되는 결과적 인상을 실질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지식재산권 침해가 문제될 때가 아니면 윤리적 논란에 그치기 쉽다.

■ 국내의 표절 시비는 오랫동안 대중가요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국회 인사청문회를 비롯한 고위공직자 인사검증 절차를 통해 비로소 논문 표절이 사회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남의 것은 물론이고 자신의 옛 논문을 새것처럼 써먹는 '자기표절'까지 문제가 된다. 표절에 대한 윤리적 비난은 상상력이나 지식을 훔쳐내는 행위 자체가 주된 표적이지만, 그 결과로서 걸맞은 노력 없이 누리게 된 이득에 대한 거부감도 깔고 있다. '이중이득'은 곧 '부당이득'이다.

■ 이 도둑질에 대한 반감은 문화전통에 따라 많이 다르다. 구미에 비해 크게 관대한 한국적 태도는 '지식 도둑'을 비난하기는커녕 권장해 온 전통적 태도의 소산이다. 옛사람의 뛰어난 문장을 많이 외워 자유롭게 꺼내 쓰는 것이 지식 수준을 재는 핵심 잣대였다. 다만 한국적 '지식 도둑'에는 표절과 달리 '몰래'라는 인식이 없었다. 절창(絶唱)의 구절이나 운을 그대로 딴 시를 읊더라도 동류집단에서는 누구나 출처를 알 만했으니 도둑질이기 어려웠다.

■ '표절(Plagiarism)'의 어원인 라틴어의 '플라지아리우스(Plagiarius)'는 유괴범을 뜻했다(위키피디아). 17세기에 말은 영어에 끼어 들었지만, 18세기에 이르기까지 대가의 문예 창작물을 최대한 같게 베끼고 불필요한 창작을 배제하라는 것이 대세였다고 한다. 지금의 표절 인식은 근대화의 산물이고 한국은 그 초입에 있다. 그런데 팔 슈미트 헝가리 대통령과 새누리당 문대성 후보의 올림픽 금메달은 학위논문 표절 시비를 겪고도 여전히 빛날까.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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