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프리스타일 모굴스키 대표인 데보라 스칸지오는 지난 23일 자국에서 열린 국제스키연맹(FIS)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에서 깜짝 놀랐다. 한국의 프리스타일 모굴스키의 차세대 스타인 최재우(18ㆍ청담고)가 마치 토비 도슨(36) 스타일의 경기력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최재우의 공격적인 공중 연기를 감상하던 스칸지오는 도슨 코치가 한국 대표팀의 지도를 맡게 됐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도플갱어' 같은 사제지간은 사상 첫 세계대회 메달을 안기며 한국 프리스타일 스키의 희망을 밝혔다. 대한스키연맹 창립 67년 만의 쾌거를 달성한 최재우와 도슨 코치를 28일 압구정동의 한 카페에서 만나 '닮은꼴' 모굴스키 인생을 들어봤다.
'1인3역'과 죽음의 파워 프로그램
캐나다에서 유학하며 올림픽 금메달의 꿈을 키운 최재우는 그 동안 외로움과 싸웠다. 하지만 지난 2월 처음으로 도슨 코치를 만나면서 모든 게 달라졌다. 훈련 환경에서부터 지원까지 '팀'이 생겼다. 최재우는 "이전까지 자비로 대회에 출전하고 훈련 장소도 마땅치 않았다. 하지만 이제 든든한 버팀목이 생겼다"라고 흐뭇해 했다. 도슨 코치는 국제대회에 가면"이제 코치가 있잖아. 걱정 말고 따라와"라며 수제자의 어깨를 다독였다. 그리고 둘은 이탈리아 세계주니어선수권 프리스타일 모굴 부문에서 동메달을 합작하며 운명적인 만남의 서막을 알렸다.
도슨 코치는 "한국 모굴스키가 환상적인 첫 걸음을 내디뎠다. (최)재우가 잘 따라오고 있기 때문에 미래는 더욱 밝다"고 미소 지었다. 환경이 개선되긴 했지만 도슨 코치는 '1인3역'을 맡고 있다. 연기 지도는 물론이고 피지컬 트레이너와 팀 닥터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그는 "트레이너 등이 필요하지만 점점 나아질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트레이너를 대신해 직접 만든 체력 프로그램은 이미 모굴스키 유망주들에게 전달됐다. 또 도슨 코치는 다음달 15일 알펜시아 리조트에서 2주간 '죽음의 파워 프로그램'으로 불리는 체력 훈련을 할 예정이다. "밸런스와 순발력, 체력 보완에 초점을 맞춘 프로그램이다. 하루 5시간의 강행군이기 때문에 선수들은 죽음의 캠프를 각오해야 한다."
'제2의 토비 도슨'보다 '스키계의 김연아'
유망주 최재우는 도슨 코치가 2006년 토리노동계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는 것을 보면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동양계 선수가 메달을 따는 것을 보고 저도 충분히 '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슨 코치의 지도를 받게 된 것도 영광이다. "올림픽 메달리스트는 모셔오려고 해도 힘든데 코치님이 한국을 선택한 건 정말 행운이다."
얻을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지도자를 만난 최재우는 도슨 코치의 뒤를 이어 올림픽 메달을 꿈꾸고 있다. 하지만 '제2의 토비 도슨'이 아닌 '스키계의 김연아'가 되는 게 목표. 최재우는 "김연아는 세계 정상에 섰고 국제 영향력도 대단하다. 저도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라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15세 때 최연소 국가대표로 발탁되며 천재성을 보인 최재우는 준수한 외모에 두뇌 회전도 빨라 스타성을 두루 갖추고 있다. 소위 말하는 '엄친아'. 그는 "4살부터 스키를 탔지만 지금까지의 노력은 10분의 1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더 많은 노력으로 올림픽 금메달을 노리겠다"며 성실함을 약속했다.
소치 '맑음', 평창 '쾌청'
최재우와 도슨 코치는 도전적이고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진 점도 똑같다. 사제지간이 내뿜는 에너지가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의 전망도 더 밝게 비추고 있다. 도슨 코치는 "(최)재우가 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소치올림픽에도 메달 가능성이 높아졌다. 물론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에 중점을 두겠지만 소치올림픽의 성과도 기대할 만하다"고 밝혔다. 도슨 코치가 최재우에게 강조하는 건 꾸준한 경기력. "정상급 선수들은 상황 대처 능력이 좋다. 에너지가 넘칠 때와 컨디션이 안 좋았을 때의 중간점을 항상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마인드 컨트롤과 집중력을 높이는 게 필수"라고 강조했다.
극한의 상황에서 놀라운 기량을 발휘한 점도 비슷했다. 최재우는 이번 대회 내내 감기 몸살로 고생했지만 동메달을 따냈다. 도슨 코치도 2005년 유사한 경험이 있다. 발바닥 수술을 한 뒤 일주일이 지나고 월드컵을 뛰었는데 예선에서 1위(결선 3위)를 차지한 것. 그는 "어쩌면 아플 때 더 경기에 집중할 수 있다. 정신적으로 강해진다면 몸 상태는 문제가 안 된다"며 정신력 강화에 집중할 것임을 암시했다.
턴과 착지 기술이 약점으?지적됐던 최재우는 도슨 코치의 지도를 받은 뒤 기량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 그는 "점프 후 코스 방향으로 착지하면 진입이 훨씬 유리하다는 것을 코치님이 알려줘서 알게 됐다. 다음 시즌에는 월드컵에서 꾸준히 10위권에 진입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제자에 대해 도슨 코치는 "(최)재우는 일정한 정점 없이 계속해서 오르막을 탈 것으로 믿는다. 평창올림픽에서 강력한 메달 후보임이 틀림없다"며 한국 모굴스키의 장밋빛 미래를 예고했다.
김두용기자 enjoysp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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