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아프리카 중부에는 육안으로 구분하기 힘든 섬이 하나 있다. 학자들은 인도양에 떠 있는 마다가스카르섬 동쪽 해안선의 가파른 절벽이 바로 오래전 망각의 섬이 떨어져 나간 흔적이라고 한다. 환영처럼 안개를 머금고 해수 위로 둥둥 떠 있는 작은 왕국. 자칫 구름인 줄 알고 지나칠 수도 있는 이 섬을 대륙의 사람들은 망각의 섬이라고 부른다. 한 때 이 섬은 아프리카에서 가장 풍부하고 독특한 문화를 자랑했었지만 유럽 사람들이 이곳을 발견하면서 자유와 평화를 잃었다. 장정들은 노예로 팔려가고 가족들이 생이별을 하면서 정서적으로 큰 상처를 입었다. 그래서일까. 이 섬의 주민들은 망각 속에 살아 가고 있다. 유전자 탓인지 환경 탓인지 망각은 오랜 시간 지속되고 있다. 어느날 전사 출신의 강한 사람이 노예 무역으로부터 섬을 지켜줄 것을 약속하며 이들의 지도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권력을 잡는 순간 사람들의 희망과 기대를 저버린 채 저만의 유토피아를 건설하려 했다. 전사들을 모아 군대를 만들어 독재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 추장을 향한 섬 사람들의 불만은 날로 더해갔지만 무력으로 진압당했고 섬 전체가 하나의 군대가 되어버렸다. 울창하던 숲과 희귀 동물들마저도 사라져 갔다. 크고 작은 많은 사건들을 겪어내면서 순박했던 사람들은 차라리 망각을 택하였다.
독재자. 그는 사실 어릴적 아버지가 노예로 팔려가시는 것을 보고 힘센 전사가 되겠다고 굳게 마음 먹었던 다부진 아이였다. 대륙의 나폴레옹을 꿈꾸던 그는 정신적 힘이 아닌 무력을 택했고 강한 의지로 결국 추장의 자리까지 오르게 되었다. 그는 전사들만이 이 섬을 지킬 수 있다고 믿고 섬 전체에 군대를 배치했다. 대륙에도 이 섬에 대한 소문이 퍼져나갔다. 몇몇 외신들은 아프리카의 인권 보호를 주장하며 망각의 섬의 고립을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간섭은 추장을 무척 불편하게 하였다. 추장은 점점 거칠고 난폭해졌다. 이를 보다 못한 한 전사가 추장이 술에 취한 사이 벼랑 끝으로 밀어버렸다. 섬이 혼란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이를 알리지 않은 채 추장의 딸이 대신 지도자의 자리에 올랐다. 추장의 딸은 이 섬은 아버지가 건설한 왕국이라 믿고 있었다.
왕국을 거머쥔 그녀는 문득 홀로 서는 것이 두려워졌다. 대신 황폐해진 섬을 담보로 대륙과 외교를 하기 시작했다. 상처받은 섬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기는커녕 대외적으로 체면을 세우기에 급급했다. 섬의 자연을 회복한다는 명분으로 많은 인력을 동원해서 땅을 파고 산을 깎았다. 이렇게 하면 섬이 더 높이 뜰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작은 왕국은 그녀의 손에 달려 있었다. 대다수의 주민들은 또다시 망각에 빠져 이전의 독재자를 잊고 추장의 딸을 중심으로 새로운 희망을 꿈꾸어 가기도 했다. 대륙에서 이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갔다. 이들은 망각의 섬에 숲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고는 자신들의 회사를 들여와 자원을 공급하는 대신 서서히 섬을 점령 하려고 했다. 건물이 많아지고 사람들이 많아질 수록 섬은 무게를 지탱하기가 버거워졌다. 이대로 가다가는 섬이 바다로 추락할 것만 같았다. 실제로 그렇게 가라앉은 섬이 저 바다밑에 수두룩 하다는 사실을 몇몇 사람이 기억해 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의 기억은 오래가지 않았다. 원주민들의 삶이 터전이었던 숲을 되살리고 주민들의 마음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 망각 이전의 기억을 되살려야 한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주민들은 자신들의 섬이 하강하고 있다는 사실보다 대륙이 가까워진다는 사실에 안도하였다. 추장의 딸은 그저 민심이 흐르는 대로 역사가 흐르는 대로 흐뭇해 한다. 주민들이 꿈꾸던 작은 왕국은 이제 미래를 뒤로 한 채 다시 망각을 택한다. 비극이다. 이렇게 그 섬은 천천히 내려앉고 있다.
심연으로 가라앉은 희망의 한 자락 누가 손내밀어 끌어 올릴 것인가. 망각이라는 안개를 걷어내기 위해 정신과 뜻과 힘을 모아야 한다. 섬은 그 누구의 왕국도 아닌 섬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자 정신의 뿌리이다. 섬이 망각에서 깨어나는 그 순간 대륙의 역사는 전환점을 맞게 될 것이다.
박근형 연극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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