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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불법사찰 규명에 이 정권의 명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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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불법사찰 규명에 이 정권의 명운 걸렸다

입력
2012.03.30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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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참담할 따름이다. 공개된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사찰내용은 21세기 대한민국의 국가정체성 자체를 의심케 하는 수준이다. 문건에는 본래 감찰대상인 고위공무원과 공기업 임원은 물론 일반인과 기업인, 국회의원을 비롯해 언론계, 학계, 금융계, 시민단체, 노동계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대상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인 사찰이 자행된 것으로 나타나 있다. 마음만 먹으면 국민 누구든 권력의 감시ㆍ통제 하에 둘 수 있었다는 뜻이다. 중앙정보부와 보안사, 사직동팀으로 대표되는 권위주의시대 정보사찰기관의 망령이 되살아난 셈이니 참으로 끔찍스러운 역사의 퇴행이다.

물론 이전 정권들에서도 공직기강 확립과 민심 파악을 명분으로 유사한 조직이 운영됐고, 일부 월권으로 문제가 된 적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현 정부의 사찰행태는 그 차원이 전혀 다르다. 촛불시위 직후 부랴부랴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조직됐고, 특정 지연과 인맥으로 얽혀 사조직처럼 운영돼온 점으로 볼 때 온전히 정권 안보를 위한 친위조직이었음을 부인키 어렵다.

실제로 사찰대상 공직자도 전 정권에서 임명된 인사들에 집중돼 사퇴 압박수단으로 사용됐고, 금융계 등 다른 분야 인사들에 대한 사찰도 제 사람을 심기 위한 제거용으로 사용된 흔적이 역력하다. 여당 내의 비판적 정치인에 대해서도 사찰을 하고, 특히 여론 형성에 영향이 큰 언론계를 집중 감시하고 노골적으로 인사에 개입한 정황 등은 조직의 활동목표를 분명하게 확인시켜 준다. 더 기막힌 건 사찰수법이다. 도청 미행을 불사해가며 사생활을 샅샅이 훑고 직접 관련 없는 주변인들까지 무차별로 감시한 데 이르러서는 공포심마저 들 정도다.

무엇보다 납득되지 않는 건 불과 40여명 남짓한 공직윤리지원관실만으로 이토록 광범위한 사찰이 가능했겠느냐는 점이다. 일부 시정동향 보고를 취합한 내용이 포함됐다 해도 2,600건이 넘는 사찰은 작은 조직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2,600여 건이 전부인 것도 아니다. 당연히 다른 정보기관들을 활용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고 보는 게 상식이다. 명백한 불법행태 자료들을 확보하고도 숨긴 검찰을 비롯해 상당수 유력기관들이 사찰과 은폐에 관여했으리라는 것이 합리적인 의심이다. 앞으로 수사에서 집중 규명돼야 할 것도 바로 이 대목이다.

사찰문건 도처에서 'BH(청와대) 하명'이라는 표현이 발견되는 마당에 수사범위 따위를 논하는 건 부질없다. "총리실의 문제"라는 식의 어쭙잖은 청와대 해명은 여전히 사안의 중대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사안은 민주국가의 정체성을 기저에서부터 허문 국기문란사건이다. 이젠 검찰수사가 아니라 특검, 국회 공청회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강구해 진실을 명명백백히 드러내고 잘못을 바로잡지 않으면 정권의 명운을 장담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와 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이명박 대통령의 중대 결단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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