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총리실 불법사찰 사건 수사에 나섰던 검찰은 김종익 전 KB한마음 대표에 대한 사찰 외에 다른 불법사찰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했다. 하지만 29일 총리실의 사찰 문건 2,619건이 공개됨으로써 검찰의 말은 허구로 드러났다. 당시 검찰은 수사 실패 원인을 총리실의 조직적인 증거인멸로 돌렸지만, 실제로는 수사의지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검찰의 고질인 '정권 눈치보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이날 공개된 사찰 문건은 충격적이다. 더욱이 이 자료를 검찰이 이미 2년 전 확보했다는 점에서, 재수사에 나선 검찰의 수사 동기마저 의심받게 될 위기에 처했다. 왜 검찰은 2년 전에 이를 공개하지 않고 덮었던 것일까.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사찰을 벌였던 2008, 2009년은 이명박 정권 출범 초기였고,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 2010년은 향후 국정 운영의 향방을 가늠할 시기였다. 즉 사찰 내용이 공개되면 이명박 정권이 전 정권을 주 타깃으로 무차별 사찰을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되고, 결국 정권 차원에서 공직윤리지원관실을 '친위대'로 삼았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될 게 뻔한 상황이었다.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정권의 이런 위기의식을 공감하게 되면서 김종익씨 관련 수사와 함께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증거인멸 부분만 마무리하는 선에서 사건을 종결시켰다는 관측이다. 한마디로 청와대와 어떤 방식이 됐든 교감을 한 검찰이 적당한 선에서 덮는 방식을 택했다는 것이다. 특히 당시 수사팀과 검찰 수뇌부 사이에 수사 방식과 확대 여부를 놓고 불협화음이 있었다는 후문이 끊이지 않고 있어 이 같은 분석에 힘이 실린다.
또 다른 이유는 사찰 자료의 증거로서의 가치 때문이다. 사찰 내용이 비록 방대하기는 하나 이는 정황일 뿐, 혐의를 포착해 수사를 확대해 나갈 단서로 삼기엔 부족했다는 것이다. 당시 수사팀 관계자는 이날 문건 공개 사실을 듣고 "일반론적으로 불법사찰로 볼 수 있지만, 형사법적 테두리 안에서 기소해야 하는 검찰 입장에서는 불법사찰의 증거로 삼기 어려웠다"며 "문건을 토대로 기소 가능한 범죄는 모두 기소했고, 문건을 숨길 이유도 없었기 때문에 재판에 제출했다"고 말했다. 의혹 당사자들이 혐의를 극력 부인하는 상황에서 단편적인 사찰 내용만으로 실제 불법이 있었는지 확인하기가 현실적으로 힘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모두 수사 의지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검찰의 선택을 정당화하는 이유가 될 수 없다는 지적이다. 불법사찰은 국가가 주도한 인권유린 사건으로 발본색원해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는 당시 이미 형성됐고, 검찰의 역할은 바로 인권 수호라는 점에서 검찰은 직무유기를 했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권지윤기자 legend8169@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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