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이 잘 됐는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은 보통 의사다. 수술 결과뿐 아니라 방법을 선택하고 치료과정을 주도하는 사람도 대부분 의사다. 그런데 척추를 다루는 신경외과는 좀 다르다. 영상으로 봤을 땐 문제 없이 끝난 수술이라도 환자가 여전히 불편해하면 잘 됐다고 하기 어렵다. 수술 후 환자의 만족도가 수술 성패를 가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술할지 말지 선택 역시 많은 경우 환자에게 달려 있다.
김주한(45ㆍ사진) 고대구로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그래서 환자를 만나면 일단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 대하듯 안부인사부터 하고 사소한 일상 이야기를 꺼낸다. 환자의 일상과 밀착된 커뮤니케이션에서 최선의 치료법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세포 키우는 집도의
"처음 병원에 오면 증상이랑 별 관계 없는 얘기를 많이들 하세요. 시간 없다고 그런 얘길 안 들어드리고 단도직입적으로 어디가 어떻게 불편하냐고 물으면 긴장해서 정작 아픈 속내는 잘 꺼내놓지 않죠."
예를 들어 다리가 언제 어떻게 저리냐고 구체적인 증상부터 따져 묻는 게 아니라 시장엔 자주 가나, 집에서 시장까지 얼마나 머나, 시장 가는 동안 다리는 괜찮나, 못 걷겠다 싶을 정도로 저리나 같은 것을 물어본다. 환자가 평소 느끼는 통증이나 불편을 세세하게 꺼내놓을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끄는 것이다. 척추 환자 중엔 대부분 아픈 걸 참고 지내는데 익숙하거나 수술을 부담스러워 하는 노인이 많다. 이를 염두에 둔 배려이기도 하다.
"듣다 보면 뭐가 문제인지 감이 오죠. 척추에 똑같은 문제가 있어도 환자마다 증상을 느끼는 정도는 차이가 클 수 있어요. 게다가 척추질환은 아직까지 치료 방법에 정답이 없습니다. 검사에서 척추가 아무리 심하게 변형됐어도 환자가 지내는데 지장이 없으면 당장 수술이 필요 없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진단이나 치료 방법에 대해 의사들끼리 의견이 다른 경우도 적지 않다. 유럽에선 가능하다면 수술을 않고 치료하려는 쪽이고, 한국 미국은 최근 들어 수술을 많이 하는 편이다. 어느 쪽이 옳다 그르다라고 누구도 칼로 무 자르듯 쉽게 결론 내리지 못한다.
결국 환자마다 적합한 치료법을 찾아내 가능한 많은 환자를 만족시키려면 의사 자신의 사고가 열려 있어야 한다. 한 가지 증상이나 검사 결과를 놓고 다양하게 분석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가 수술이나 진료, 강의 외에 많은 시간을 실험실에서 보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요즘은 실험실에서 디스크(척추뼈 사이사이에 들어 있으면서 척추가 움직일 때 쿠션 역할을 해주는 물질) 세포를 키운다.
"10명 수술하면 10명 좋아져야"
"허리 아픈 증상의 80~90% 이상은 근육통이에요. 한 2주 누워 지내며 약 먹으면 좋아지죠. 문제는 약이 안 듣고 통증이 몇 개월 계속되는 나머지 10% 정도에요. 학계 의견은 디스크 손상 때문인 걸로 모아지고 있는데, 정확한 원인은 아직 모르죠."
이렇게 모호한 디스크성 통증은 약이나 재활치료로 효과가 없으면 손상된 디스크를 수술로 제거하기도 한다. 그러나 10명 수술하면 6, 7명이 좋아지는 정도다. 환자에게 수술을 권하기엔 부족한 데이터라는 게 김 교수의 생각이다. 그래서 아예 디스크성 통증이 생기는 메커니즘을 실험으로 직접 찾아보기로 했다.
우리 몸에선 조직이 손상되면 면역세포의 일종인 대식세포가 제일 먼저 출동한다. 디스크 역시 마찬가지다. 디스크엔 원래 혈관이 없는데, 대식세포가 활동하면서 염증 반응이 생기기 시작하면 비정상으로 혈관과 신경이 자라고 통증을 일으키는 각종 물질들이 만들어진다. 김 교수는 바로 이 과정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려는 것이다.
"물론 기초실험이 당장 치료에 도움 되진 않아요. 하지만 이런저런 다양한 생각을 해볼 기회를 만들어주죠. 어느 한 치료법이 옳다는 쪽으로 생각이 치우치는 것도 피할 수 있고요." 환자에게도 수술하면 어떻고 안 하면 어떤지, 약이나 운동만으로 얼마나 좋아지는지, 얼른 수술해야 할지 좀더 지켜보는 게 나을지 등 다양한 방향으로 설명을 해주게 된다.
디스크성 통증 메커니즘에 관한 김 교수의 실험논문은 지난해 척추 분야 최대 국제학회인 북미척추학회(NASS)에서 최우수 논문세션에 채택됐다. 1,300여 편 되는 전 세계 논문 중 가장 우수한 20여 편에 뽑힌 것이다. 국내 연구자로는 처음이었다.
"척추질환 임상 분야에서 한국이 선도적이라는 건 이제 국제학계가 인정하고 있어요. 하지만 기초 분야에선 여전히 변방 취급을 받는 게 현실이죠. 수술기법 말고도 병의 메커니즘을 밝히는 등 기초의학을 연구하는 게 척추질환 완치에 분명 도움이 될 겁니다."
최근 척추 관련 전문병원이 늘고 수술 건수가 증가하면서 새로운 수술기법이나 기구가 많이 소개되는 추세다. 각광받는 최신 기술을 환자에게 적극 추천하는 의사가 있는가 하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의사도 있다. 김 교수는 컥悶?가깝다. 외과의사임에도 직접 실험을 하고 데이터 따져보길 중시하는 성격의 영향도 크다. 그는 10명 수술하면 10명 모두 좋아질 수 있다는 충분한 근거가 있어야 환자에게 적용할 수 있다고 믿는다.
자신이 정답이라는 함정에 빠져선 안돼
신경외과 후배 의사들에게 김 교수는 편하지 않은 선배다. 무서워한다는 소문도 들린다. 후배는 함께 일하는 선배를 보고 배운다고 김 교수는 확신한다. 그 때문에 후배를 마냥 편하게 대해줄 수만은 없다. 특히 환자와 관련된 부분에선 더 엄격하다. 하지만 후배보다 경험이 많다는 게 장점만은 아니란 걸 선배 김 교수는 잘 알고 있다.
"경험 많은 사람의 단점은 자신이 겪은 길만이 정답이라고 여기기 쉽다는 거에요. 전공의 같은 젊은 의사들이 더 다양하고 자유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어요. 후배 이야기도 환자에게 하듯 막지 말고 끝까지 들어야죠."
김 교수는 양손잡이다. 요즘 척추 수술은 현미경을 보면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수술하는 동안 내내 눈이 현미경에 고정돼 있어야 하는 상황에서 두 손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건 척추 집도의로서 큰 장점이다. 수술할 때 왼손과 오른손이 서로 돕듯 선배와 후배, 의사와 환자 관계도 그래야 한다는 김 교수의 믿음을 인터뷰 행간에서 읽을 수 있었다.
● 김주한 교수와 허리질환 일문일답
수술은 약물·물리치료 안들을때 최후의 방책
Q. 허리가 아프면 꼭 수술해야 하나.
A. 대부분 자연적으로 좋아진다. 증상이 심해도 약이나 물리치료에 잘 반응하면 수술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가 있다. 통증이 별로 없는데도 앞으로 나빠질 걸 대비해 미리 수술하는 것은 좋지 않다. 수술 여부는 약이나 물리치료에도 회복이 안될 때 결정하는 게 좋다.
Q. 최소침습수술 후엔 빨리 회복한다는데.
A. 상처가 작게 남는다고 항상 좋은 건 아니다. 허리 수술의 본래 목적은 수술 후 빨리 회복하려는 게 아니라 통증을 일으키는 신경을 편하게 해주거나 척추를 안정시켜 생활에 지장이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런 목적 달성을 위해서 상처는 불가피할 수 있다.
Q. 손상된 디스크 대신 인공디스크를 넣는다는데.
A. 약이나 물리치료로 호전되지 않는 디스크성 통증일 땐 수술로 기구를 넣어 아래 위 척추뼈를 이어주는데(기구고정술), 그 부위가 움직이지 않아 주위 관절에 부담이 된다. 그래서 최근엔 아예 손상된 디스크를 제거하고 디스크와 비슷하게 생긴 장치(인공디스크)로 대체하는 수술법이 나왔다. 그러나 2, 3년 후 인공디스크가 주위 뼈에 달라붙는 등 문제가 생길 수 있어 기구고정술보다 낫다고 보기는 어렵다.
Q. 평소 허리 관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A. 정기적으로 운동해서 허리 근육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근육이 잘 움직이게 해주는 스트레칭, 필요 없는 지방을 줄여주는 걷기나 수영, 자전거 같은 유산소운동, 근육을 키우는 근력운동 등을 평소 적절히 섞어 하면 허리 통증 발생을 줄일 수 있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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