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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 칼럼] '커밍아웃'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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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 칼럼] '커밍아웃'의 시대

입력
2012.03.29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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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들어서 고위공직자들의 탈법이 일상화하고 검찰과 언론은 정권의 하수인이 되다시피했다고 비판해왔지만 좋아진 것도 있다. 사람들이 진면목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환경보전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전문가가 4대강 사업을 지지하며 정부 고위직으로 들어가고 진보의 기치를 내세우며 활동해온 이들이 보수 정부의 선전논리를 만들어주는 일에 적극 가담했다. 사람들은 가면을 벗어던지고 사적인 욕망에 매우 충실해졌다.

공익적인 사람이라고 여겼던 이들의 변신을 보는 일은 가슴 아프다기보다 반갑다. 겉으로는 진보를 표방하면서 실속은 내면의 욕망을 위해 만들어내는 '오피니언 리더'들의 궤변에 휘둘릴 가능성이 훨씬 줄었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의 존재를 드러내는 상황은 더 널리 퍼져야 한다.

1999~2001년에 여론독자부장을 하면서 오피니언면에 실릴 필자를 정하고 그들의 글을 가장 먼저 봤다. 진짜 글솜씨는 알려진 것과 다른 이도 알게 됐고 당시 이회창씨가 차기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전망 때문인지 호남에서 보낸 초등학교 이름을 드러냈다고 분노한 필자도 겪었다. 칼럼을 쓸 때마다 정부에 똑바로 하라고 질타해서 '강직한 지식인' 평가를 받던 교수가 뒤로는 정부를 압박해서 수천만원대 연구프로젝트를 따내려 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도 됐다. 그 도 이번에 새누리당 비례대표 공천을 받았으니 사람들이 진면목을 드러내는 '커밍아웃'의 시대, 환영한다. 하긴 검찰이나 언론이 노골적으로 편파적인 행동을 하는 것도 본색을 드러낸 것이다.

그런데 공직자는 법을 어기고 검찰은 권력 편에서 수사하고 언론은 정부비판에 눈감은 현실조차 반가울까. 절대 아니다. 전에는 알 수 없던 것들이 이제 훤한 대낮처럼 드러났으니 바로잡을 수 있어서 좋다는 것이다. 공익적 임무를 부여받은 이들이 사익을 위해 날뛰는 상황은 민주국가로 나아가겠다면 끊고 가야 할 구습이고 악습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총선은 기회다. 그리고 반가운 조짐들이 나타나고 있다.

통합진보당 이정희 의원은 민주통합당과의 경선과정에서 보좌관이 여론조사를 조작하려고 한 사실이 드러나 후보에서 물러났다. 새누리당 손수조 후보는 전세금 뺀 돈 3,000만원으로만 선거를 치른다고 밝혀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돈은 전세금이 아니었고 정작 선거는 수천만원을 후원 받아 치르겠다고 번복해 문제가 됐다. 새누리당 문대성 후보는 박사학위 논문이 오자까지 베낀 표절논문으로 밝혀졌고 기타 논문에 대한 표절의혹도 잇따르고 있다.

그동안 국회의원은 우리나라 공직자 가운데 가장 널널한 심판을 받아왔다. 정쟁싸움의 표적이 되지 않는 이상 성희롱 이나 부패 전력도 당선에 문제가 되지 않았고 시시콜콜히 전력을 밝히지 않기 때문에 드러나지 않는 부분이 훨씬 많았다. 의전은 장관급, 직제상 대접은 차관급인데도 국민이 직접 선출한다는 점에서 행정직 공무원에 비하면 선발잣대는 느슨했다. 정병국 의원도 2011년초 문화체육부 장관 후보청문회를 갖기 전에는 불법 농지취득과 토지실명제 위반을 지적받은 적이 없다. 당시 그는 '국회의원을 3선이나 했는데 문제될 일을 했겠느냐'고 말했을 정도다.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이 세 차례나 위장전입한 사실도 남편 민일영 대법관이 2009년 청문회를 하면서야 드러났다.

그렇기에 후보 선발 이전에, 후보일 때 거짓말이 드러나는 올해 총선은 매우 바람직하다. 그러나 이렇게 명백한 거짓말이 드러났는데도 유권자가 심판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토대는 완전히 무너진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더 큰 부정도 예사로 저지를 수 있기 때문이다. 리처드 닉슨이 미국 대통령을 사임한 것도 도청 자체보다는 은폐와 거짓말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민간인 사찰 은폐과정에서 청와대가 거짓말한 것은 없는지도 밝혀야 할 시기로구나.

서화숙 선임기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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