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이 아니에요. 일상의 물건이죠." 의 저자 안애경씨는 북유럽 디자인 가구와 생활용품을 이렇게 고쳐 말했다. 북유럽 디자인의 실용성과 단순미가 알려지기 무섭게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며, 북유럽 디자인엔 어느새 '고급'의 이미지가 덧붙었다. 수입과 유통 과정에서 가격이 부풀려진 탓이지만 핀란드에서 아르텍은 평범한 학교 의자요, 이딸라의 식기는 대부분의 가정 식탁에 놓이는 보통의 물건이다.
그간 북유럽 디자인의 아름다움에 홀려 간과했던 일상성에 주목한 두 편의 전시가 눈길을 끈다. 이제는 북유럽에 대한 환상을 걷어내고, 그들이 자연과 사람을 어떤 태도로 대하며, 삶에서 무엇을 소중하게 여기는지를 들여다 볼 시간이다. 그들 디자인이 가진 진짜 가치와 의미에 귀 기울여보자는 거다.
평범함에 가치를 담다, 핀란드 디자인 전
전시장에 들어서면 처음엔 휑한 느낌이다. 중앙의 나무집 형상 아래 거실이 꾸며졌고, 한쪽엔 접시와 컵, 캔들 홀더 등 테이블 웨어가 차려진 식탁이 보인다. 나무로 만들어진 거대한 친환경 화장실과 학생들이 변주한 핀란드 전통 의상까지. 넓은 전시장에 각각의 테마가 빙산처럼 떨어져 있다. 예술의전당 한가람 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리는 '핀란드 디자인'전의 첫 인상이다.
무심히 훑어보면 이미 익숙해진 디자인에 '이게 다야?'라는 생각이 들 법하지만 디자인을 통해 핀란드인의 자연과 사람에 대한 태도를 바라보는 것이 이번 전시의 핵심이다. 전시를 기획한 안애경씨는 '북유럽 디자인의 훌륭함'을 드러내는 전시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검소하고 휴머니즘적인 가치관과 라이프 스타일이 디자인에 그대로 녹아있죠. 디자인은 부자가 향유하는 특정한 물건이 아니라 사람들이 추구하는 가치, 생활 그 자체를 말하거든요. 전시된 대부분의 물건이 평범한 핀란드 가정에서 사용하는 가구와 생활용품이에요. 이를 통해 우리의 삶과 디자인을 돌아보았으면 한 거죠."
전시장 입구에 자리한 컵과 접시 등을 디자인한 까이 프랑크는 핀란드 디자인의 대부로 불린다. 핀란드 디자인 분야에서 민주주의를 실천한 혁명가라고 할까. 1940년대 핀란드 디자인의 기반을 다진 그는 공장 노동자도 사용할 수 있게 가격을 낮추었다. 그 덕에 전 계층의 식탁엔 그가 디자인한 테이블 웨어가 놓였다.
까이 프랑크의 디자인을 그대로 이어가는 브랜드 이딸라의 테이블 웨어도 식탁에 가득 차려졌다. 매 시즌 새 상품을 내놓으면서도 심플함과 자연을 닮은 디자인은 변함이 없다. 덕분에 서로 다른 시즌의 접시를 섞어 사용해도 조화가 깨지지 않는다. 절제된 디자인이 절제된 소비를 부르는 셈이다.
대학생들이 만든 옷과 신발에선 핀란드 교육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패션 디자인을 전공하는 학생들은 옷을 디자인하고 완성하는 단계뿐 아니라 천을 직조하고 염색하는 등 옷 만들기의 전 과정을 몸소 체험한다. 같은 패션 디자인 전공자라고 해도 경험치의 폭은 엄청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좁은 울타리 속에서 1,2등 가리기에 급급한 우리 교육 현실을 되돌아보게 하는 대목이다.
자연을 사랑하면서 동시에 능숙하게 다루는 핀란드인들의 모습은 두 점의 나무 작품만으로도 충분히 드러난다. 한 점은 얇게 자작나무 껍질을 켜서 널따란 나무판에 붙인 것으로, 그 자체로 아름다운 수묵산수화다. 또 한 점은 나무를 물결 무늬로 구부렸는데, 빛에 따라 지는 음영이 멋스럽다. 이들은 장식용인 동시에 방음벽 역할을 한다. 전시는 내달 14일까지. 입장료 1만2,000원. (02)580-1300
노르딕 데이 : 일상 속의 북유럽디자인 전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 현대미술가, 공예가 등 10여 명이 참여한 '노르딕 데이'는 좀 더 일상 깊숙이 렌즈를 들이댄다. 서울 수하동 국제교류재단 갤러리에서 열리는 전시에는 북유럽의 주거공간, 자연을 소재로 한 작품, 북유럽의 현대 음악과 아이들의 놀이터가 실물과 사진, 영상 등으로 펼쳐진다.
주거공간의 재현을 통해 본 가구와 조명은 북유럽의 라이프 스타일을 알 수 있는 좋은 단서. 덴마크 가구로 채워진 그곳의 책상, 의자, 책장, 탁자 등은 다리나 상판이 두껍지 않고 늘씬하다. 기능성을 살리면서 최대한 얇게 만든 것인데, 이는 주거공간이 그리 넓지 않은 북유럽 가정의 현실을 고려한 결과다. 해가 짧아 집에 있는 시간이 긴 그들은 조명으로 사람을 각성시키는 형광등이 아닌 자연광에 가까운 백열등을 사용한다. 은은한 조명을 여러 개 사용하되, 천장에 매달린 조명은 최대한 탁자에 가깝게 끌어내려 독서 등의 실생활에는 불편함이 없게 한 것이 특징이다.
자연에서 많은 영감을 얻는 그들의 삶과 예술은 핀란드 유리 공예가 오이바 토이카의 새 연작과 사진과 설치미술을 하는 아누 투오미넨의 작품에서 두드러진다. 전시된 20여 점의 새 연작 중에는 새의 종류가 확연히 구분될 정도로 정교한 작업이 인상적이다. 누군가의 사연이 담긴 벼룩시장 물건과 나뭇가지 같은 자연의 일부를 소재로 하는 아누 투오미넨 작품은 위트가 넘친다. 못쓰는 털장갑과 털 양말 여러 개를 모아 하나의 벽 장식을 만들기도 하고, 손톱만큼 남은 색연필을 모아 요리 재료처럼 연출해 사진을 찍곤 한다. 오이바 토이카와 아누 투오미넨의 작업 과정과 인터뷰는 영상으로 전시장에서 상영돼 흥미를 더한다.
일상의 경험은 청각으로도 확장된다. 서정적인 재즈를 비롯한 북유럽의 현대음악을 아이패드와 MP3로 감상할 수 있다. 디자인 서적과 동화책 등의 서적과 애니메이션 등의 영상자료도 풍부해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북유럽과 이미 친근해진 느낌이다. 전시는 5월 5일까지, 무료. (02)2151-6529
이인선기자 kel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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