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수원시 팔달구 지동의 한 주택가. 수원성 둘레길을 따라 2층 높이의 단층 주택들이 줄지어 들어선 한적한 골목이 요새 시끌벅적하다. 희끗희끗한 머리의 ‘핑퐁음악다방 1호점’ 시니어 바리스타(커피 전문가)가 내려 주는 향이 깊은 커피를 마시러 오는 손님들 덕분이다.
16일 개점을 한 날에만 300여명이 찾았고, 주말이면 시니어바리스타의 손맛을 보려는 사람들로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원두로 내린 커피는 꽃 향이 나고 가벼운 느낌이죠. 반면 콜롬비아 수프리모 원두는 초콜릿 향이 나는데 바디감(커피를 마실 때 혀에 느껴지는 무게감)이 좋아요.”
24일 핑퐁음악다방 1호점에서는 3명의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한 바리스타 수업이 한창이었다. 교육을 받고 있는 조동식(58)씨는 바리스타 경력만 15년인 최형지(43)씨의 설명을 한 자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필기하는 손을 바쁘게 움직였다. 조씨는 “이 나이에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일을 시작하고 나니 이 나이에도 할 수 있는 게 많다는 자신감이 생겼다”며 웃었다.
핑퐁음악다방은 주택가 한 켠의 빈 공간을 활용했다. 오전에는 탁구장으로, 오후에는 음악과 커피가 있는 음악다방으로 변신한다. 오래된 LP판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나훈아 남진에서부터 1960, 70년대 올드팝 등 다양했다. 외지인의 발길이 줄어드는 평일이면 지동 주민들이 이곳을 찾아 탁구도 치고, 커피를 마시며 얘기를 나누는 동네 사랑방이 된다.
핑퐁음악다방 개점을 기획한 사회적 기업 ‘이웃’의 박인혜(25) 기획팀장은 “문화시설이 거의 없는 지동 주민들에게는 건강과 문화를 위한 공간을, 어르신들에게는 일자리를 제공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핑퐁음악다방 개점에는 이런 뜻에 공감하는 일반인 150여명이 소셜펀딩을 통해 십시일반으로 모은 500여만원과 수원시 등의 지원금이 종잣돈으로 쓰였다.
일하는 시간에 따라 월 25만~90만원을 받는 시니어바리스타에게 핑퐁음악다방은 새 일터이기도 하다. 시니어바리스타 교육을 받고 있는 김상옥(64)씨는 작은 건설회사를 다니다 건강이 나빠져 3년 전 은퇴한 뒤 이곳에서 희망을 되찾았다. 김씨는 “나이가 들면서 젊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는 게 항상 아쉬웠는데 요즘 부쩍 힘이 난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바리스타 최씨도 “초등학생 시절 아버지와 함께 다방을 찾곤 하면서 자연스럽게 커피와 친해졌다”며 “어르신들과 수업할 때가 가장 신나고 보람 있다”고 말했다.
수원=이동현기자 na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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