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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40년 전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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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40년 전의 교훈

입력
2012.03.28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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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그 일'만 없었더라면 리처드 닉슨은 가장 위대한 미국 대통령 중 한 명으로 남았을 것이다. 재임 시 그가 이뤄낸 외교적 성취는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프랭클린 루스벨트 이상으로 평가할 만한 것이었다. 소련과 중국의 갈등을 활용, 소련과의 관계를 적대에서 상호협조로 바꾸고, 대담한 핑퐁외교를 통해 위험한 은둔국 중국을 국제사회로 끌어냄으로써 냉전의 긴장을 크게 누그러뜨렸다. 지긋지긋한 베트남전쟁도 그에 이르러서야 완전하게 종식됐다.

■ 닉슨은 에이브러햄 링컨처럼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오직 혼자의 피나는 노력으로 걸출한 변호사가 되고 겨우 30대에 연방하원부터 상원의원, 부통령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눈부신 출세가도를 달렸다. 미국인들이 열광하는 성공신화에 딱 부합하는 삶이었다. 이후 케네디와의 접전 끝에 대통령선거에서 패하고,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서도 패하면서 잠시 침체에 빠졌으나 불사조처럼 재기, 1968년 마침내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써 인생역정에 정점을 찍었다.

■ 그를 나락으로 떨어뜨린 '그 일'은 워터게이트사건이었다. 대선을 앞두고 닉슨의 측근들이 벌인 민주당 사무실 도청 시도가 발단이었다. 3류 도둑들처럼 서투르고 성공도 하지 못한 이 시도는 그렇게까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사건을 키운 건 끝없는 은폐와 거짓말이었다. 결국 닉슨은 재임 시 탄핵에 몰려 사퇴한 유일한 미 대통령이 됐고, 그의 "I am not a crook(나는 사기꾼이 아니다)" 강변은 역사상 가장 유명한 정치적 거짓말로 남았다.

■ 총리실 일개 부서에서 시작된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이 검찰과 청와대 비서실로 확대되더니 대통령실장을 거쳐 급기야 VIP(대통령)로까지 불똥이 날아갔다. 일방 주장이지만 의혹은 이미 커질 대로 켜졌다. 사찰도 큰 죄지만, 거짓과 은폐는 더욱 용납되지 않는 중범죄다. "내가 몸통!"같은 어설픈 짓을 말하는 게 아니다. 국민은 실수보다 부도덕에 훨씬 더 분노한다는 게 40년 전 닉슨 정부의 교훈이다. 권력과 주변이 뭘 해야 할지는 더 말할 것도 없겠다.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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