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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정치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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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정치의 진실

입력
2012.03.28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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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전직 대통령은 "정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느냐"가 바로 정치라고 대답한 적이 있다. 정치학 교과서에 나오는 정치의 의미와는 매우 거리가 있는 대답이다. 정치학 교과서에 나오는 일반적인 정치의 의미는 사람들이 각기 원하는 것을 언제 어떻게 누구에게 유리하게 얻어 내느냐와 관련된 것이라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미 FTA의 경우 이의 조속한 비준과 발효를 원하는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 사이에서 갈등을 조정하고, 합법적이고 수긍할 수 있는 방법으로 혹은 무력으로 한쪽의 손을 들어 주는 것이 정치라고 할 수 있다. 합법적이고 수긍할 수 있는 방법으로 갈등을 조정하는 경우 정치가 잘 작동하는 것이고, 무력이나 억지의 수단으로 갈등을 봉합하는 경우 민주주의 혹은 정치가 잘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 정치에 있어서 이러한 갈등 조정의 역할은 주로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으로 대표되는 정치인들이 맡게 된다. 그런데 이들 정치인들이 정치를 잘 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그 정치인에 대한 국민 혹은 지역구민의 신뢰와 지지이다. 그 정치인에 대한 신뢰와 지지가 바로 그 정치인의 영향력으로 환산되고 그 영향력으로 정치인은 정치를 하게 된다. 여기서 문제는 거대하고 복잡하고 바쁜 현대사회에서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정치인을 수시로 만나서 어떤 사람인지 직접 객관적으로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데 있다. 결국 국민들은 그 정치인이 "어떻게 보이느냐"에 좌우되어 그를 지지하고 신뢰하고 표를 던지는 것이 현실이고, 따라서 정치인은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느냐"에 가장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이러한 논리를 따라 가다 보면 그 전직 대통령이 말한 정치의 정의는 교과서적이지는 않지만 현실 정치인의 입장에서 너무나도 솔직하고 또 통찰력 있는 답변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그런지 그 대통령은 그 누구보다도 언론에 신경을 많이 쓴 대통령으로 알려져 있다. 왜냐하면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느냐"에 가장 결정적인 것이 언론이기 때문이다.

26, 27일 양일에 걸쳐서 제2차 핵안보정상회의가 서울에서 열렸다. 무려 53개국의 정상급 인사와 4개 국제기구 대표가 참석하여 무사히 회의가 종료되었고 서울 코뮤니케라는 정상선언문도 만장일치로 발표되었다. 사실 서울 코뮤니케의 내용을 보면 국제정치 전문가가 읽어도 쉽게 읽히지 않는 매우 전문적이고 기술적인 내용 일색이고 한국의 안보에 직접적으로 의미가 있는 내용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고농축우라늄(HEU)연료사용 원자로, 저농축우라늄(LEU)연료사용 원자로, 핵물질방호협약(CPPNM), IAEA의 핵안보기금(NSF), 의료용 동위원소의 공급 등 전문가가 아니면 알 수 없는 내용과 용어로 점철되어 있다. 일반국민은 서울 코뮤니케를 해석할 능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과연 대한민국이 실제로 국격을 높였는지를 정확하게 평가할 수도 없다. 오히려 정상회의의 의제와 직접 연관이 없는 장외에서 행해진 북한의 광명성 3호 발사계획에 대한 여러 정상들의 비판에 더욱 관심이 쏠렸다.

필자도 핵물질이 테러집단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자는 것이 핵심 의제인 핵안보정상회의에 이렇게까지 막대한 국민의 세금을 들여야 하는지에 다소 비판적이지만 정치인인 대통령은 "국민에게 어떻게 보이느냐"라는 면에서 대단히 정치적인 행위를 한 것이다. 이제 4·11 총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국회에 입성하고자 하는 많은 정치인들이 지역구민들에게 어떻게 보이느냐를 놓고 피를 말리는 경쟁을 하고 있다. 자신을 멋지게 꾸미는 일을 하는 경우도 있고 상대방을 흠집 내어 상대방의 어두운 면을 국민에게 보이게 하는 전략도 사용된다. 유권자들은 과연 정치인들의 어떤 모습을 볼 것인가. 물론 본인들의 정체성이나 이념 성향에 따라 보고 싶은 것을 보겠지만 막판 당락을 좌우하는 부동층은 시대착오적이고 추상적인 종북, 반미보다는 보다 현재적이고 구체적인 정부의 비리나 잘못을 보고 싶어 하지 않을까.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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