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ㆍ11 총선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됐다. 공천 과정에서 여야는 유별나게 기득권 배제와 유권자와의 소통을 강조했지만 결국 구태의연에 그쳤다.
개중에서도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의 낙마를 부른 여론조사의 신뢰성 문제는 앞으로도 두고두고 되씹어볼 만하다. '조작 가능성'이 실증된 만큼 근본적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 한 유효한 후보 선정 방법은 되기 어렵다.
참고용이던 여론조사가 정치적 결정의 잣대로 쓰인 것은 2002년 대선을 앞둔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후보의 단일화가 결정적 계기였다. 이어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후보 경선에서 이명박 후보가 대의원 투표에서의 열세를 여론조사 결과로 뒤집고 박근혜 후보를 눌려 거듭 위력을 떨쳤다. 그 연장선상에서 여야는 이번 총선 공천에서 여론조사를 큰 비중으로 반영했다.
여론조사가 각광을 받은 이유는 간단하다. '정당 민주화'라는 명분과 '당선 가능성'이라는 실리적 요구의 일치가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당 지도부의 뜻과 당내 계파별 세력 분포를 반영한 '하향식 공천'의 비민주성을 극복하자는 당내 민주화 요구는 일반 당원의 의사를 앞세우는 당내 경선, 즉 '상향식 공천'을 불렀다.
그러나 이 또한 조직적 동원능력에 좌우되기 쉽고, 바로 그 때문에 당심(黨心)과 표심(票心)이 동떨어질 개연성이 상존한다. 둘을 일치시켜 당선 가능성을 높이는 데서 여론조사의 가치는 빛난다. 그런데 여론조사가 표심을 왜곡할 수 있고, 이번처럼 조직적 조작이 아니더라도 그런 위험을 처음부터 배제할 수 없다면 얘기가 다르다.
그 동안 여론조사와 선거 결과와 크게 다르면 표본 추출의 기술적 문제가 으레 거론됐다. 대부분의 국민이 휴대폰에 의존하는 현실에서 집 전화를 이용한 결과 주부와 노령층의 의사가 과도하게 반영됐다거나 1,000~1,500명 의 표본이 너무 작다는 등의 지적이 잇따랐다. 언뜻 그럴싸하지만 오해에서 비롯한 속설이다.
이론상 무작위 표본 추출(Random Sampling)은 연령과 성별, 출신 지역, 교육수준, 직업 등 모집단의 속성을 거의 그대로 반영하며, 표본 크기가 일정 이상이면 신뢰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또한 현실적으로 무작위 추출이 제약될 경우 조사 시간대의 조정 등 무작위 추출에 근접시킬 방안이 있다. 더욱이 최근의 여론조사 대부분이 모집단의 속성을 반영해 연령과 성별, 지역 등의 속성별로 응답자를 미리 할당해 표본을 추출한다. 휴대폰 조사를 적극 활용하는 등의 해결책도 있다.
또 설문 내용과 방법에 따라 응답 결과가 달라진다는 지적도 최소한 선거 여론조사와는 무관하다. 선거 여론조사의 핵심 물음은 '누굴 찍겠느냐'여서 선거의 '1인 1표'와 그대로 일치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론조사가 빗나간다면 조사기술이 아니라 응답자의 주관적 인식과 태도에서 비롯했을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6ㆍ2 지방선거 강원지사 보궐선거는 여론조사로는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 엄기영 후보의 낙승이 예상됐으나 결과는 민주당 최문순 후보의 압승이었다. 한 전문가는 이를 '공안 통치'라는 말로 요약했다. 과거와 같은 '공안통치'는 상상도 할 수 없지만, 현장 유권자들의 막연한 불안을 달리 쉽게 설명할 길이 없어 끌어댄 용어다. 강원 유권자들의 정체성 노출 불안에 합리적 이유를 대기는 어려워도 현장에서 충분히 확인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이런 불안은 속성상 도시에서 농촌으로 갈수록, 야당 지지 성향일수록 커지게 마련이다. 더욱이 아직 '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의 실제 범위와 대상이 확인되지 않는 상태에서 치러지는 선거라면 더욱 커지기 쉽다.
애초에 여론조사는 구체적 수치보다 변화 추이를 참고하는 데 그쳐야지만, 이번 선거는 특별히 유권자의 이유 없는 불안을 충실히 고려해야 할 성싶다. 잇따라 보도된 '경합 지역'의 여론조사 수치가 많이 달라 보인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