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불법사찰 및 증거인멸 사건의 불길이 마침내 이명박 대통령에게까지 번졌다. 판도라의 상자를 연 장진수 전 총리실 공직지원관실 주무관은 그제 한국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자신의 직장 알선 문제가 VIP에게 보고됐다는 말을 총리실 간부로부터 들었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VIP는 이 대통령을 뜻한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민간인 불법사찰 및 증거 인멸에 관한 전반적인 사항이 이 대통령에게 보고됐을 가능성이 커 걷잡을 수 없는 파장이 예상된다.
이에 대해 해당 총리실 간부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검찰에서 모든 것을 밝히겠다"고 부인했다. 이 간부가 'VIP 보고'말을 한 게 사실이라 해도 장씨를 안심시키려고 꾸며낸 얘기일 수도 있다. 결국 진실 여부는 검찰 수사를 통해 가려질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가 민간인 사찰과 증거 인멸 등 은폐ㆍ축소 관련자들의 입막음을 위해 전방위로 뛴 정황이 분명해지고 있어 이 대통령도 의혹선상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장씨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자신을 포함해 불법사찰로 재판을 받는 7명을 특별 관리한다는 말을 들었다고도 했다. 자신의 취업 알선을 위해 청와대 인사담당관 등이 나섰다는 주장은 매우 구체적이다. 당시 임태희 대통령실장이 사건 관련 구속자 가족들에게 명절 위로금을 전달했다는 것은 이미 확인된 사실이다. 청와대 내에서 대통령 모르게 이런 일들이 벌어지기 어렵다고 보는 게 자연스럽다.
이 사건의 몸통을 자처한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 자신이 지휘한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보고서를 '민정수석실 보고용'과 '직보용' 두 가지로 작성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불법 사찰의 결과물이 대통령실장 등 '윗선'을 통해 이 대통령에게까지 보고됐을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증언이다. 공식 지휘계통을 벗어난 비선조직이 민간인 불법사찰과 같은 탈법을 거리낌없이 저지르는 것은 최고 권력의 비호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제 사태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진실을 있는 그대로 밝히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