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현재 국내 휘발유 가격(전국 평균)은 ℓ당 2,043.69원. 82일째 한번도 쉬지 않고 오르고 있다. 고유가가 장기화되면서 운전자들이 기름값에 둔감해졌다는 지적도 있지만, 생업을 위해 차를 몰아야 하는 사람들은 무뎌져서가 아니라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기름을 넣고 있는 실정이다.
이쯤 되면 정부가 나서도 진작 나섰어야 했다. 명색이 '친서민'을 표방하는 정부가 미친 기름값을 이대로 방치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정부의 유가대책은 오직 '알뜰주유소'다. 앵무새처럼 알뜰주유소만 되뇌고 있다. 물론 좋은 정책이다. 정유사와 주유소가 밀착된 과점적 유통질서에 충격을 준다는 점에서, 보다 경쟁적인 휘발유 가격환경을 조성한다는 점에서, 충분히 의미가 있다.
하지만 당장의 효과는 기대 이하다. 애초 정부가 장담했던 ℓ당 100원은커녕 평균 50~70원 정도 싼 게 현실이고, 일부 지역에선 자가폴 주유소(특정 정유사 간판을 달지 않는 주유소)들이 더 저렴하게 기름을 팔고 있다. 당장 하루하루의 기름값이 버거운 생계형 운전자들은 알뜰주유소의 중장기적 효과를 기다릴 만큼 여유롭지가 못하다.
정부가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대책은 유류세 인하다. 휘발유가격의 약 절반이 세금인 상황에서, 유류세를 낮추면 소비자들은 확실히 인하를 체감할 것이다.
하지만 정부입장은 확고 불변하다. 첫째, 두바이유 국제현물가격이 배럴당 130달러가 되어야 세금을 낮출 수 있다는 것, 둘째 낮추더라도 서민들에게만 혜택이 돌아가게 하겠다는 것. 그리고 지금 두바이유 가격이 배럴당 122달러 전후니까,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 사정은 안다. 전체 국세수입의 약 14%(25조원)를 차지하는 유류세를 섣불리 손댔다가는 그렇지 않아도 빠듯한 재정에 큰 부담이 될 것이란 점을 모르는 건 아니다.
그렇다 해도 서민들이 이토록 고통 받는 데 '아직 130달러가 아니어서' 유류세를 낮추지 못하겠다는 건 이해할 수 없다. 대체 130달러의 근거가 뭔지, 환율이 폭등해도 국제유가가 129달러이면 그 때도 유류세를 안 낮추겠다는 것인지, 국내 석유가격이 연동하는 싱가포르 석유제품가격은 이미 135달러까지 가있는데 이건 상관없다는 것인지, 세상에 이런 맹목적이고 경직된 정책이 또 있나 싶다.
정부는 지난 26일 정유사 사장들을 불러 모았다. 유가안정에 '협조'해달라고 했다는데, 말이 협조이지 정유사들은 작년의 악몽(강제인하)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고 한다.
정부도 이젠 뭔가 해야 한다. 알뜰주유소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정유사에만 협조를 요구할 것이 아니라, 정부 스스로도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대체 언제까지 130달러에만 매달리고, 언제까지 '서민들에 유류세 환급'을 검토만 하고 있을 것인지. 참으로 무책임한 정부가 아닐 수 없다.
산업부 김종한기자 tell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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