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베토벤의 학생이에요." 피아니스트 김선욱(25)에게는 초심이 느껴진다. 지난달 결혼하고 런던에 살림을 차린 새신랑이어서만은 아니다.
26일 통영국제음악제에서 윤이상의 작품을 비롯해 리스트 등을 연주하고 밤을 도와 달려온 27일 오전 기자간담회 자리에서도 소년처럼 엷게 홍조 띤 얼굴이었다. 그가 2년에 걸쳐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32곡) 연주의 장정에 나선다. 알프레드 브렌델, 안드라스 쉬프, 백건우 등 거장들의 이름 뒤에 그가 자신의 이름을 올리는 것이다.
이날 LG아트센터 VIP라운지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만난 그는 그러나 무척 편해 보였다. "'열정' '월광' 등 알려진 곡보다 초기 소나타 등 소외된 곡들을 부각시키자는 생각에 베토벤 소나타가 주는 설렘과 걱정을 동시에 느끼고 있어요." 올해 네 차례 무대에서는 전반부 16곡을 연주한다. "베토벤은 피아니스트에게 근본과 같은 인물이에요. 음악을 만드는 구조와 틀을 원초적으로 제시하고, 질적으로 따스한 인간적 음악의 모범이죠."
그는 자필 악보는 물론 슈나벨, 쉬프 등 거장들의 해석까지 판본으로 인정되는 베토벤 소나타에서 진정한 자신의 무대를 만들자는 욕심이 크다. "소나타라는 굳어진 형식 속에서 베토벤이 진정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찾아내 전달하려는 거죠." 스승 김대진에게서 어려서부터 구조에 대한 공부를 열심히 한 덕을 크게 보는 셈이다. 녹음을 전제하지 않은 순수 무대인 만큼 자신만의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그를 부추겼다.
그것은 파릇했던 자신을 만나러 가는 길이기도 하다. 5곡의 피아노 협주곡을 하루 만에 완주한 '사건'(2009년)은 소나타 완주의 꿈을 재촉했다. 그는 "콩쿠르 준비하느라 다양한 작곡가들을 섭렵하던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무대 위에서 가장 뿌듯한 기분을 선사한 것은 단연 베토벤이었다"고 말했다.
"베토벤의 초기 곡들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기도 하지만 원래 너무 어려워요. 음표도 많고 시간도 길죠." 엄격한 소나타 형식의 1~7번, 판타지와 장엄한 상상력이 뚜렷한 8번 이후 등 대비되는 작품 세계를 비교 음미하는 라이브 무대가 되리라는 자부다. "귀가 멀어 상상력으로만 화음을 만들어 간 작품 번호 90(소나타 27번) 이후부터는 브람스, 슈만으로 이어지는 세계를 보여주죠." 그는 당대 음악은 물론 자신의 음악적 맥락과도 현저한 괴리를 빚는 베토벤의 후기 작품에 대한 해석에서 자신의 판단과 선택을 최선의 가치로 두고 있다. 그 같은 주관이 생기고 난 뒤에는 빌헬름 캠프, 다니엘 바렌보임, 안드라스 쉬프 등 소위 전범이 되는 선배들의 음반과 콘서트와는 담을 쌓았다.
김선욱은 "통영국제음악제에서 커뮤니케이션의 즐거움을 막 느끼고 왔다"며 "다음달 일본 투어에서 오케스트라와 협연, 악기에 대한 이해를 보다 깊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베토벤 역시 그의 음악적 여정에서 하나의 과정이다. "베토벤이 끝나면 프랑스나 러시아 음악을 하고 싶어요. 경험해 보지 못한 것에 대한 간절함으로…."
베토벤 소타나 전곡 연주회는 LG아트센터에서 29일(1~4번) 시작해 6월 21일(5~8번), 9월 6일(9~12번), 11월 8일(13~16번)로 이어진다. 나머지 16곡은 내년 4월부터 4차례 걸쳐 연주한다. (02)2005-0114
장병욱 선임기자 aj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