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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시대 지성과의 대화] <8> 탈식민주의 이론가 가야트리 스피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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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시대 지성과의 대화] <8> 탈식민주의 이론가 가야트리 스피박

입력
2012.03.27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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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심이 없다는 것이 오늘날 운동의 특징… 노동자를 조직화한다고 금융자본주의 모순 극복할 순 없다"

가야트리 차크라보르티 스피박(70) 미국 컬럼비아대 비교문학 교수는 인도 출신의 세계적인 탈식민주의(postcolonialism) 이론가로 꼽힌다. 1976년 자크 데리다의 <그라마톨로지> 를 영역하며 데리다의 해체철학을 독자적인 관점으로 해설해 영미 학계에 이름을 알렸다.

스피박의 이론은 해체론을 비롯해 포스트식민주의, 페미니즘, 마르크스주의, 문화 연구 등을 복합적으로 아우른다. 우선 그는 여성, 노동자, 이주민처럼 사회에서 배제된 사람들을 일컫는 안토니오 그람시의 '서발턴'(Subalternㆍ하위주체) 개념을 '지금 여기'에 대입한다. 즉 전지구적 자본의 재배치라는 상황에서 포스트식민 연구, 페미니즘 연구를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스피박이 페미니즘, 특히 제3세계 하위주체 여성에서 관심을 두는 것도 이들이 하위주체 중에서도 하위 주체를 대변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스피박의 이론이 어지러워지는 지점은 해체론을 만나면서부터. 해체론은 주체가 어떤 대상을 인식하는 것은 명명을 통해 가능한데, 명명과 인식의 파악 과정에서 빠져나가거나 넘쳐나는 잉여, 초과, 잔여의 지점이 언제나 발생한다고 지적한다. 그는 해체론을 페미니즘 연구와 포스트식민 연구에 대입해 계급해방이나 여성해방을 이야기하는 모든 거대서사, 거대 이론을 비판하는데 적용한다. 그의 대표작 <다른 세상에서> (1987) <서로 다른 아시아> (2008) 등을 번역한 태혜숙 가톨릭대 영문과 교수는 <교육기계 안의 바깥에서> (1993) 해설에서 "스피박의 입장은 탈식민화에 대한 날카롭고 윤리적인 의식을 가진 이론가조차도 '제국주의적 인식의 폭력'에, 지구적 지배전략들에 공모하게 되는 딜레마에 집약돼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국내에는 1990년대 후반부터 <스피박의 대담> (1990) <상상의 지도들> (1995) 등 여러 저서가 번역 출간됐다. 제3세계의 학자로서 영미 학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고 국내 학계가 주목하는 탈식민주의 역사를 연구한다는 점에서 국내 지성계와 출판계에서 꾸준한 관심을 받고 있다. 인터뷰는 이택광 경희대 교수가 24일 오후 뉴욕 컬럼비아대의 교수회관인 컬럼비아 클럽에서 진행했다.

-당신은 탈식민주의 이론가, 또는 젠더 이론가라고 불리는데, 왜 이런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됐는가.

"내가 의식적으로 탈식민주의를 연구한 것은 아니다. 나에게 정치는 윤리의 문제라기보다는 젠더의 문제다. 왜냐하면 젠더는 거기에(제3세계와 70~80년대에)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젠더의 문제가 거기 있었기 때문에 내가 연구한 것이다. 모든 인간은 추상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 능력으로 인해 인간은 사회정의에 대한 추상화된 생각을 가질 수 있다. 남아와 여아가 태어나서 상징적인 아버지를 가지고 어떤 것이 좋고 어떤 것이 나쁘다는 윤리를 획득하는 과정에서 젠더의 문제가 작동한다는 것이다. 물론 내가 젠더 문제만 집착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경험을 읽는다는 차원에서 나에게 가장 먼저 중요했던 화두를 연구했을 뿐이다."

-최근 작업은 무엇인가.

"아프리카에 관심을 두고 있다. 아프리카는 너무 일반화되어 있다. 비교문학자로서 이 문제는 중요하다. 아프리카 상황은 상당히 흥미롭다. 컬럼비아대의 글로벌센터가 아프리카와 관계 있다. 깨끗한 물과 에이즈 문제, 그리고 아프리카에 지적인 교육을 제공하는 것들에 대해 관심이 많다."

-당신은 2009년 래디컬 필로소피가 주관한 소셜포럼에서 마르크스주의 정치철학자 에티엔 발리바르와 정치적 행위자(정치적 견해를 적극적으로 개진하고 활동하는 주체)에 대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내 작업에서 주체와 행위자를 구분해서 논하는 경우는 많았다. 주체는 훨씬 광범위한 의미로 쓰일 수 있다. 주체가 정치적으로 행동할 때는 이성을 생산한다. 이런 이성은 명확한 삼단논법을 따르게 마련이다. 이때가 바로 민주주의에 대한 직관이 작동하는 순간이다. 매우 간단한 주장이다. 하지만 주체는 보다 넓은 개념이고, 정치적 행위자는 좁은 개념이다."

-그렇다면 월가 점령 시위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정치적 운동은 정치적 행위자와 관련해서 일어나게 마련이다. 이성적이라는 말이다. 나의 임무는 이런 정치적 행위자가 어떻게 주체와 서로 엮여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아주 일반적인 것으로 모든 정치운동에 적용될 수 있다. 월가 점령 시위도 마찬가지다. 주체와 정치적 행위자라는 점에서 이 운동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요즘 많은 이들이 자본주의의 위기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 위기의 본질은 무엇이고, 해결책을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다고 보는가.

"이 위기는 전적으로 탈규제적인 금융자본주의 때문에 초래된 것이다. 전세계적인 상품교환이라는 전무후무한 조건도 이를 촉진했다. 미국의 경우 이런 문제점은 과거 뉴딜정책이 시작되던 1920년대에서 1930년대 때부터 잠재해 있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은행 같은 금융자본에 대한 규제를 재구성하는 일이다. 물론 이런 해결책은 단기적인 것이다. 이것만 해도 무척 많다. 또한 이것은 전체 시스템을 바꾸는 장기적 계획과는 다르다. 지금 세계는 시스템 전환의 시기에 와 있는 것 같다. 자본과 자본주의는 다른 것인데, 국경이라는 장벽은 점점 무너지고, 민족자본은 국제자본이 되었다. 세계자본주의를 관리하는 문제는 이런 교환의 문제에 대한 재고를 전제한다. 국가기능의 재분배와 헌법상 권리는 무의미해졌다. 이걸 신자유주의라고 부를 수 있겠다. 우리는 이런 문제를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지, 세계적으로 규제를 어떻게 재수립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이 문제는 사회적 정의와 관련한 것이기도 하다."

-지난해에 시사주간지 타임이 커버인물로 '시위자'를 선정했듯이, 많은 이들이 거리로 뛰쳐나와서 자기표현을 했다. 많은 지식인들이 이를 설명하려고 했다. 예를 들어, 지그문트 바우만은 지난해 여름 런던폭동을 '좌절한 소비자의 저항'으로 이해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한다고 보는가.

"미국은 1970년대에 사회복지국가의 틀이 모두 깨어졌다. 레이건 정부 시절에 집중적으로 이러 파괴 행위가 일어났다. 물론 전세계적으로 상황은 비슷했다. 이들은 장벽을 없앤다는 명분으로 모든 규제를 풀어버렸다. 이로 인해 팍팍한 대중의 현실은 가중되었다. 아랍 혁명과 인도의 시민운동이 같은 범주로 묶일 순 없다. 이런 다양한 사람들이 이집트나 튀니지에서 일어난 상황에 고무되기도 했지만, 이들이 일관된 흐름을 가졌다고 보기 어렵다. 이 현상은 확실히 스펙터클하지만, 미국의 경우 많은 시민들이 서발턴화(주변화)되었고, 국가의 복지제도에 접근할 수 없는 '배제된 자'들로 전락했다. 굳이 좌절한 소비자라고 부르지 않더라도, 이런 움직임이 사회정의 실현이라는 거창한 목표를 가진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오히려 자기이해관계에 충실한 운동처럼 느껴진다. (시위자들은)소비자라기보다, 서발턴화된 시민이라는 생각이다."

-지젝은 이런 운동이 자기 이해관계에 근거한 움직임이라면, 운동 자체가 아무런 성과를 낼 수가 없다고 지적하며 과거 레닌의 당 같은 것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중을 그냥 두는 것이 아니라 조직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누가 그걸 조직화한다는 말인가.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이것이다. 레닌은 혁명적 지식인이 아니었다. 거기에 모인 이들은 결코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이 아니다. 이들은 누구보다도 교육을 잘 받았다. 월가 점령 시위는 군중이 일으킨 사건이 아니다. 그들은 군중이 아니다. 지젝이 살고 있는 슬로베니아처럼 조직적으로 군중운동이 일어날 수 있는 게 아니다. 미국처럼 복잡한 사회에서는 (그런 제안은) 소용이 없다."

-지젝은 현실 사회주의국가에서 겪은 경험을 토대로 의견을 개진했다고 생각한다. 당에 대한 견해도 이런 것이라고 본다. 꼭 교육을 받은 사람들 중심이라기보다, 운동을 조직할 이론적인 준비 같은 게 있어야 한다는 것 아닐까.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는 금융자본주의 사회가 한쪽에 있고, 대중운동이 다른 한쪽에 있다. 레닌은 이 둘을 잘 알고 있었다. 레닌이 대중과 전위정당을 이야기했을 때, 이런 전제가 깔려 있었다. 레닌이 살던 시절은 강력한 제국주의 시대이기도 했다. 그래서 레닌은 노동력에 초점을 맞춘 사회주의를 건설했고, 상품교환 문제에는 소홀했다. 지금의 상황과 많이 다르다. 레닌주의에서 중요했던 노동의 문제는 이제 모순의 중심이 아니다. 중심이 없다는 것이 오늘날 운동의 특징이다. 지금 이런 모델을 도입할 수는 없다. 노동자를 조직한다고 금융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해방의 운동은 좀 더 복잡한 과정을 가진다."

-소셜네트워크(SNS) 같은 신기술이 사회운동과 어떤 관계가 있다고 보는가.

"한 마디로 아무 것도 아니다. 기술은 독립적인 것이 아니다. 누가 그걸 이용하는지가 관건이다. 정치적 행위자와 주체가 이 기술을 조작한다. 때로 이유 없는 활동을 하기도 하지만, 이들은 전세계적인 규모로 이런 기술을 이용한다. 그러나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이 지구상에 더 많다. 인터넷을 총체성과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SNS는 해악이 가지 않는 선에서 인상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이런 까닭에 이 기술에 따른 결과는 독이면서도 약이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한다고 본다."

-기술에 대한 경계는 개개인의 경험이 곧바로 정치담론으로 발전할 수 없다는 평소 주장과 관계가 있나.

"일상의 경험은 매우 중요하다. 잘 훈련된 지성은 경험을 토대로 추상적인 것을 만들어낸다. 중요한 것은 끝없이 경험을 해석하는 과정을 통해 정치적 행위자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 방향성을 제시해야 하는 것 같다. 대중도 그걸 원하는 것 같다. 목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단기적 처방이 아니라, 장기적인 문제를 말한다. 실천적인 의미에서 인간의 삶을 바꾼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중은 각기 서로 다른 상황에 놓여 있다. 항상 '리얼리티 체크'(개인별로 사회 현실을 인식하는 정도를 점검하고 대조)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세대별로 사회정의에 대한 견해가 다르다. 이 모든 것을 감안해서 교육에 대해 말하는 것이 내 입장이다. 나는 유토피아적인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일상을 긍정하자는 것인가?

"당연히 그래야 한다. 자신이나 타인의 경험에 의미를 부여하는 능력은 매우 중요하다. 정치적 행위자로 행동하는 것은 이런 능력에서 발현된다."

-그 능력에 윤리적 기준이 작용하는 것 같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이런 기준이 바뀌어야 하는 것 아닌가.

"왜 세상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세상은 바뀌는 것이다. 윤리적 사고라는 건 이런 것과 다르다. (선악의 가치판단을 내리는) 윤리는 (사회 체제가 만든) 도덕과 헷갈리게 마련이다. 사람들은 결코 단일하지 않다. 지배적 담론이 있더라도 사람들마다 그것이 작동하는 방식이 다르다. 지배적 담론에 따라 사람들이 움직인다는 것은 무의미하다. 구체적인 차원에서 이들은 움직인다."

-'구체적인 차원'은 일상 생활의 경험을 뜻하나.

"대중이 구체적이기만 한 건 아니다. 추상적이기도 하다. 구체적인 것은 추상적인 방식으로 읽힌다. 따라서 대중이 구체적이기만 할 것이라는 생각은 금물이다. 경험과 추상을 구분하긴 어렵다. 내가 초점을 맞추는 것은 정의 그 자체다."

-한국 독자에게 전하는 말은.

"한국 독자들이 나를 좋게 봐줘서 영광이라고 생각한다. 내 작업은 독자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질 것이다. 내가 처음 탈식민주의에 대해 쓰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내가 무엇을 하는지 몰랐다. 사람들이 나를 탈식민주의 비평가라고 불렀을 때, 나는 (그런 규정에) 상당히 비판적이었다. 나는 탈식민주의를 탐구하긴 하지만, 일반적인 탈식민주의와 다른 관점에서 연구한다. 내가 탈식민주의를 바라보는 관점은 누가 이것을 하며, 왜 이것을 해야 하는지에 관한 것이다. 내가 하는 작업은 문화정치학이다. 탈식민주의가 아니다."

공동기획=이택광교수ㆍ정리=이윤주기자

■ "국가는 지켜야할 최소한의 구조" "국민국가 체계 극복 전망 보여줘"

가야트리 스피박과 주디스 버틀러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는 페미니즘 이론 영역에서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하는 여성학자들이다. 박미선 한신대 영문과 교수는 “스피박이 인도 출신으로 탈식민주의 이론과 페미니즘 이론을 교차시킨다면, 버틀러는 동성애자로 이분법적 성담론에 갇힌 젠더 연구에 문제를 제기하며 퀴어 이론을 창시했다”고 소개했다. 버틀러가 기존 사회체제에서 인정받지 못한 ‘제3의 성’을 통해 우리사회 합의의 불가능성 문제를 제시했다면 스피박은 제3세계 여성으로 다양한 페미니즘 담론의 가능성을 주장한 다원주의적 관점을 제시했다는 설명이다.

두 사람은 2006년 5월 캘리포니아주립대 어바인 캠퍼스에서 ‘전지구적 국가, 전지구적 상태’란 주제로 대담을 나눈 적이 있다. 그 해 4월 미국 전역에서 미등록 이민자 문제가 정치적 쟁점으로 떠오르며 불법체류자는 물론 이들을 돕거나 고용하는 사람까지 처벌하는 법안이 발의되자 이 법안을 규탄하는 시위가 벌어졌고, 캘리포니아에서는 수십만명의 라틴계 이민자들이 미국 국가를 스페인어로 번역해 부르며 시위를 벌였다. 대담은 이 사건을 계기로 ‘지구화 시대의 국가’ 문제를 페미니즘적 시각으로 해석한다.

버틀러는 라틴계 이민자들의 시위를 “국민국가 체계에 균열을 냄으로써 그 체계를 극복할 전망을 보여준 사건”으로 풀이하며 국가를 국민 대 비국민으로 나누는 배제와 분리의 기제로 파악한다. 반면 스피박은 국가를 전지구적 자본주의로부터 구성원을 보호하는 장치라고 규정하며 “국가는 우리를 위해 유용하게 쓰일 수 있기에 우리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추상적 구조”라는 입장을 취한다.

박미선 교수는 “국내에서도 전지구적 자본주의에 대해 민주주의 강화, 국가의 자본시장 개입 필요성 등 다양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며 “스피박과 버틀러의 논의는 21세기 글로벌 자본주의 시대 국가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유효한 생각들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공동기획=이택광 경희대 교수

정리=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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