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문학이 등장한 것은 근대 자본주의 체제가 구성되면서 '어린이'의 개념이 생긴 120년 전부터, 그중에서도 청소년문학이 장르로 자리잡은 것은 대략 2차 세계대전 전후로 추정한다. 이지영 창비 청소년문학팀장은 "영미권이나 일본에서는 청소년소설 독자층의 고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고 SF나 판타지처럼 하나의 장르문학으로 인정받고 있는 추세"라고 소개했다.
아동문학평론가 최윤정씨는 국내 아동ㆍ청소년 시장과 가장 유사한 나라로 프랑스를 들었다. "감성적이고 사색적인 문장을 좋아하는 독자의 정서가 닮았다"는 이유다. 프랑스에서도 독자층 고령화 현상이 뚜렷하다. 2009년 출판전문주간지 에 따르면 1999년만 해도 10~15세, 500만명 안팎이던 아동ㆍ청소년소설 잠재 독자층이 10년 만에 10~25세, 1,200만명 가량으로 늘었다. 최근 청소년(adolescent) 취향의 성인(adult)을 가리키는 신조어 'adulescent'까지 등장했는데 출판 시장의 현실도 이런 흐름이 반영됐다. 아동문학가 베르트랑 페리에는 청소년과 성인층을 동시에 겨냥하는 책을 '크로스오버' 상품으로 분류하고 양 독자층을 공략하는 전략으로 같은 책을 두 가지 판본(문고본과 양장본)으로 차별화하는 방법 등을 제시하기도 했다.
국내 아동ㆍ청소년 번역작품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영미권에서는 아동ㆍ청소년 소설이 판타지 등 다른 장르문학과 혼합되는 추세다. 영국작가 앤지 세이지의 청소년판타지소설 '셉티무스힙' 시리즈는 미국에서만 100만부 이상 팔리며 '해리포터'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YA(Young Adult)문학'으로 불리는 일본의 청소년문학도 독자층이 넓어지고 있다. 평론가 노가미 아키라는 올해 봄호 기고에서 "2000년대 중반부터 아동청소년소설 독자가 성인층까지 확대되면서 아쿠타가와 상, 나오키 상 등 일반문학상 후보에까지 오르게 됐다"고 전했다. 그는 "최근 몇 년간 청소년소설은 흥미위주의 오락물이 주를 이뤘지만, 세계적 금융위기, 대지진과 원전사고로 진지하고 깊이 있는 작품이 많이 창작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김은하 비룡소 편집장은 "국내 아동ㆍ청소년문학의 성장에는 출판사의 시리즈물이 크게 작용했지만, 영미권은 작가 위주로 성장했다"고 말했다. 아동문학가 노경실씨는 "양으로 본다면 아동청소년출판 분야에서 한국은 강대국이지만 장르적 한계가 크다"며 장르와 소재의 다양화를 주문했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 참관 김지은 아동문학 평론가
이탈리아의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이 지난 19~22일 열렸다. 올해 49회를 맞은 이 도서전은 아동ㆍ청소년 도서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가장 큰 전시회다. 한국문학번역원은 해마다 이곳에서 우리 아동문학을 알리는 행사를 진행하는데 올해는 '거울: 어린이를 비추다'를 주제로 어린이의 삶에 사실적으로 접근한 그림책과 아동, 청소년문학 작품 55권을 소개했다. 동화작가 김남중과 일러스트레이터 김동성의 강연도 열렸다. 이 행사의 발제를 맡아 볼로냐에 다녀왔다.
올해 행사는 경기 불황의 영향인지 전체적으로는 한산해 보였지만 한국관에 대한 관심은 높았다. 출발이 늦었던 우리 어린이책은 2009년 이 도서전의 주빈국이 되면서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2010년부터 3년 연속 라가치상 수상작과 우수작을 낸 데다 개성이 강한 일러스트레이터가 많다고 정평이 나면서 호의적인 발길이 이어졌다. 올해도 이현주씨가 <그리미의 하얀 캔버스> (상출판사)로 '오페라 프리마'를 수상했다. 지난해 이곳에 더미북을 들고 와 프랑스에서 출간 의뢰를 받았던 그가 올해는 바로 그 책으로 신인상을 받은 것이다. 그리미의>
지난해 <달려 토토> (보림출판사)로 브라티슬라바 국제 일러스트레이션 비엔날레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한 조은영씨의 원화는 이번 볼로냐 도서전의 도록 표지를 장식했다. 전시장 중앙에 화려한 초청 전시회도 마련됐다. <달려 토토> 는 대상 독자층과 사회적 시선을 더불어 넓혀가는 어린이책의 최근 흐름을 대변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아이의 눈으로 경마장에 몰린 어른들의 천태만상을 바라본 내용인데 0세에서 100세까지 즐기도록 기획된 '더 콜렉션 시리즈'에 속해 있다. 달려> 달려>
세계를 휩쓴 경제 위기와 어른들의 불안은 아이들의 현실 인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번 도서전을 돌아 보니 그림책뿐 아니라 아동ㆍ청소년 문학에도 폭력, 핵, 빈부격차, 도박, 마약 같은 주제를 예리하게 다룬 작품이 부쩍 늘었다. 올해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 수상자인 네덜란드 작가 휘스 카위어는 <엄청나게 시끄러운 폴레케 이야기> 를 통해 열한 살 폴레케를 둘러싼 종교, 민족 간 갈등, 마약중독, 가정 붕괴와 사회적 안전망의 문제를 가감 없이 그려 '유머와 재미로 가득한 서사를 삶의 커다란 질문과 결합하는 능력을 가진 작가'라는 평을 받았다. 엄청나게>
전통적인 아동도서 강국인 영국과 미국의 부스는 지루할 정도로 기존 캐릭터에 의존하는 데다 상업적인 기획물만 내밀어 큰 눈길을 끌지 못했다. 오히려 중남미, 아랍어권, 지난해 주빈국이었던 리투아니아 등의 부스는 활기를 띠었다. 신간을 보고 계약하는 일은 인터넷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가능한 상황에서 도서전의 흐름을 주도하는 것은 거대 출판 그룹들이 아니었다. 출판인들은 변방의 새로운 시선과 그동안 듣지 못했던 목소리를 담은 책에서 가능성을 찾고 있었다. 저작권 업무를 담당하는 사계절 강현주 실장은 "어린이책의 완성도나 예술성의 국가 간 격차가 크게 줄었다"며 "누가 이 축제에서 더 과감하고 개성적인 시도를 하느냐"에 주목한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아동 청소년문학은 일러스트의 눈부신 성장에 부응할 수 있는 독립적 시각의 매력적인 서사를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지 고민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지의 실험을 넘어서는 관점의 발굴, 통찰의 도전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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