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희미한 미소를 그리며 자리에 앉았다. 말수 적은 미소년과 왈가닥 소녀 사이 어디쯤에 닻을 내리고 있는 듯한 외모. 손에 들린 길쭉한 주스 잔과 닮아 보였다. 김옥빈의 등장만으로도 27일 오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는 다른 차원으로 이동했다.
김옥빈은 29일 개봉하는 영화 '시체가 돌아왔다'(감독 우선호)에서 악덕 기업주에게 첨단 연구 결과를 빼앗기고 목숨까지 잃을 뻔한 고지식한 정보통신 연구원의 딸 동화 역을 맡았다. 아버지의 후배 연구원 현철(이범수), 우연히 알게 된 천하의 한량 진오(류승범)와 손잡고 시체를 활용해 악당에게 통쾌한 복수를 선사하는 연기를 펼친다.
빨갛게 염색한 머리와 로커를 떠올리는 검은 복장으로 등장하는 동화의 외모부터 예사롭지 않다. 아르바이트 돈을 떼먹은 편의점 사장의 결혼식에 찾아가 그의 얼굴에 캠코더를 들이미는 대목에선 제법 어울리지만 '정상'과는 거리가 멀다. 무덤덤한 얼굴로 짤막하게 "시체를 훔치자"고 말하는 장면 등에선 괴짜 기질이 역력하다. 남편의 친구인 신부를 꼬드겨 정을 통하고 함께 파멸하는 여인 태주('박쥐')와 교집합을 이루는 이미지. 최근 케이블TV 프로그램을 통해 보여준 프로젝트 밴드 오케이 펑크의 활동과도 맥이 닿는 모습이다.
유별나게 유난스러운 역할에만 집착한다는 말이 나올 법하다. 그는 "사람들의 그런 인식에 대해서 딱히 신경을 쓰진 않는다"고 했다. "일단 시나리오를 보고 마음이 끌리면 선입견 없이 역할을 맡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개성 강하거나 센 역할만 택하려고 하진 않아요. 물론 되돌아 보면 그런 역할이 많긴 해요. 그러고 보면 그게 제 취향일 수 있고요. '시체가 돌아왔다'도 뭔가 허술하면서도 신기하고 재미있어 선택했어요. 동화가 내성적이었던 어렸을 적 저랑 많이 닮기도 했고요."
'시체가 돌아왔다'는 여러 인간 군상들이 뒤엉키면서 제조해내는 소동이 소소한 웃음을 연이어 안긴다. 김옥빈은 "현장에서 뛰어 다니며 마구 웃기고 싶었지만" 감독은 버릇 없으면서도 묵직한 카리스마를 지닌 소녀의 이미지를 원했다. 자신의 감정을 자주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동화의 속마음을 알맞게 전달해야 하는 연기. 무표정한 얼굴에 여러 감정들이 깃들어 있는 그이기에 가능한 역할 아니었을까.
차기작은 멜로가 곁들여진 공상과학영화다. '시라노; 연애조작단'의 김현석 감독이 메가폰을 들 'AM 11:00'에서 그는 물리학자를 연기한다. 죽은 아내를 소생시키려 타임머신을 만드는 남자를 짝사랑하는 역할이라고. 그는 "오늘 집을 나오면서 출연하기로 마음을 굳혔다"고 했다. 4차원이라는 수식이 어울리는 발언. "초중고교 시절 내내 연극반 활동을 하면서도 무대엔 한번도 오르지 않은" 그의 별난 이력도 떠올랐다.
애인이 가수(밴드 스키조의 허재훈)이고 오케이 펑크 활동으로 앨범까지 냈는데 노래에 대한 욕심은 없을까. "겪어 보니 쉽게 하고 싶단 말을 못하겠어요. 전 노래방도 잘 안가요. 가더라도 딱 두 곡 부르고 나와요. 선배님이 시키면 한번, 분위기 살리려 또 한번."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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