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ㆍ11 총선 공천 과정에 낯뜨거운 풍경이 참 많았다. 우선 '돌려막기 공천'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새누리당 송영선 의원(비례대표)은 돌고 돌아 경기 남양주갑에서 공천을 받았다. 그는 당초 고향인 대구에서 출마를 준비했다. '비례대표 텃밭 출마 불가론'이 나오자 그는 경기 파주갑에 노크하다 결국 연고가 없는 남양주에 배치 받았다. 송 의원은 지역 주민들에게 '박(근혜) 전 대표가 남양주에 가서 민주당 자리를 탈환하라고 해서 낯선 데 왔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서울 강동구에 출사표를 던졌던 새누리당 노철래 의원(비례대표)도 경기 광주 지역 공천장을 받았다. 두 의원은 모두 친박계다. '용산의 딸'로 자처하던 새누리당 배은희 의원은 갑자기 '수원의 딸'이 됐다. 30년 동안 살았던 용산에서 공천을 받지 못하고 경기 수원을에 긴급 투입됐기 때문이다.
민주통합당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적지 않았다. 민주당은 서울 강동을 경선에서 떨어진 박성수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을 송파갑에 공천했다. 또 경기 군포 예비후보로 등록했던 안규백 의원을 서울 동대문갑 공천자로 재조정했다.
이번 공천의 최대 문제점은 무엇보다 특정 대선주자 측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는 것이다. 새누리당 공천은 친박계가 전적으로 주도했다. 통상적으로 공천심사위에는 주류뿐 아니라 비주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인사들도 참여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위기에 처한 새누리당은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에게 '비상대권'을 부여했다. 새누리당 공천위는 전적으로 박 위원장 의중에 따라 구성됐다. 비주류인 친이계를 대변할 수 있는 인물은 공천위에서 완전 배제됐다.
공천위는 국민 눈높이와 원칙에 맞춰 '시스템 공천'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공천 결과를 보면 원칙, 시스템과는 거리가 멀었다. 당초 친이계 의원은 90~100명이었고, 친박계 의원은 50~60명이었다. 하지만 공천을 받고 살아남은 현역 의원 중에는 친박계가 더 많았다. 이른바 '친이계 학살'로 계파 역전이 이뤄졌다. 새로 공천 받은 인사들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대다수가 친박계와 연관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새누리당 공천자 230여명 중에서 절반 가량이 친박 성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치러진 2008년 총선 때 친이계가 독식했다면 이번에는 친박계가 폭식한 셈이다.
민주당에서도 '보이지 않는 손'이 공천을 좌지우지했다. 박영선 최고위원은 "한명숙 대표는 원칙을 갖고 공천해보려 했지만 우리당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고 항의하면서 최고위원 사퇴 의사를 밝혔다. 친노그룹과 시민사회세력 등이 공천 과정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했음을 폭로한 것이다. 실제 민주당 공천자를 분석해보면 친노그룹이 최대 세력을 형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야에서 각각 친박계와 친노그룹이 주도하는 공천이 진행된 셈이다. 공천 결과만 놓고 보면 이번 총선의 대결 구도는 '박근혜 대 노무현의 싸움'이 됐다.
왜 친박계와 친노그룹은 자파 인사들을 집중 지원하는 '캠프 공천'을 밀어붙였을까.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말처럼 친분이 있는 사람들을 지원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더 깊은 뜻이 있다. 총선 이후 전개될 대선 후보 경선 레이스를 다분히 의식했다. 여야의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가까운 인사들이 국회의원과 당협위원장(지역위원장)으로 포진하고 있어야 득표전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캠프 공천은 대선 레이스에서 뛸 돌격대를 만드는 준비 작업이 된 셈이다. 대다수 정치인들은 자신에게 자리를 준 사람을 위해 뛰게 된다. 따라서 이렇게 공천을 받고 금배지를 달게 되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공천을 준 계파 보스를 위해 몸을 던질 가능성이 높다. 국가보다 당과 계파를 먼저 생각하다 보면 국회에서 몸싸움도 피하지 않게 된다. 공천 결과를 보면 19대 국회의 풍경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공천이 사천(私薦)이 아닌 진짜 공천(公薦)이 돼야 하는 이유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김광덕 정치부장 kd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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