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골로 애용하는 한 인터넷 서점에서 메일이 한 통 왔기에 열었더니 헌 책을 대신 매입해준다는 얘기였다. 이곳에서 운영하는 중고서점이 큰 인기를 끈다더니 책을 계속 사들여야 할 만큼 대박이 난 모양이었다. 책이라 하면 읽기보다 장식용으로 꽂아두는 걸 즐겨 하는 탓에 팔 요량을 몰랐던 나는 어느 순간 책장 앞에서 이 책 뺐다 저 책 넣었다 바삐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이고 지고 있다 한들 그 많은 책들이 다 내 머릿속에 똬리 틀고 앉아 있을 것도 아니고 하여 작심한 끝에 고르고 골라 보니 묘하지, 켜켜이 쌓인 그 책의 모양새가 참으로 슬픈 형국이더란 말이다. 사실 뚜렷한 기준이랄 건 없었다.
저자나 지인이 면지에 사인을 남긴 책, 행간마다 꾹꾹 눌러 그은 밑줄로 굵은 볼펜심 자국이 선명한 책, 여러 번 넘겨 읽은 증거인양 낱장마다 침 자국이 남은 책, 그리고 예전 어느 날 헌책방에서 사들여 더는 팔 수 없다 싶은 책.
고등학교 시절 유일한 낙이라면 주말마다 친구랑 배다리 헌책방 골목을 배회하는 일이었다. 천 원짜리 한 장으로 다섯 입 베어 먹고 나면 없어질 핫도그도 아니고 책을 살 수 있다니. 그때 양손 가득 노끈 묶어 사 나르던 책 가운데 한 권이 지금 내 손에 있다. 무슨 소리인지 알아먹지도 모르면서 나 잘났다 싶어 사들였던 실비아 플라스의 시집. 안녕 내 책들아! 그러나 내 헌 책 사시는 분 가운데 시인 나오면 참말 좋겠네.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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