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참 빨리 바뀌는 것 같다. 젊은 친구가 이런 얘기한다고 어른들이 나무랄지 몰라도 내게도 그렇게 느껴지는 점이 많으니 송구하지만 어쩔 수 없다. 특히 그 중에서도 가장 빨리 변하는 곳이 정치판이 아닌가 싶다. 불과 두 달 전 상황을 떠올려보자.
민주통합당은 한명숙 대표 체제 출범과 함께 본격적인 여권 사냥에 나섰다.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차지할 것이란 전망이 나돌았고,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문재인 상임고문이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을 제치는 등 안팎으로 축제 분위기였던 것을 잘 기억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회생이 불가능한 상태로 여겨졌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24일 한국일보-한국리서치 여론조사에서는 미세한 차이지만 당 지지율ㆍ투표할 정당ㆍ예상되는 원내 제1당을 묻는 질문에 모두 새누리당이 윗자리에 올랐다. 그 짧은 시기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첫째는 민주당의 착각이다. 야당후보 단일화가 모든 걸 해결해 줄 것으로 믿었던 데 있다. 민주당은 야권연대에 공을 들였지만 내용적으론 구걸이나 다름없었다. 야권연대란 여당에 맞서 야당들이 한발씩 양보하면서 협력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통합진보당은 정권교체라는 대의 안에서도 '제 몫 챙기기'를 포기하지 않았고, 전에 없는 호조건 속에서도 민주당은 휘둘리기만 했다.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의 여론조사 조작 파문으로 인한 야권연대 균열 위기는 그 결정체다. 봉합됐다지만 후유증이 크다. 표 이탈만 염려한 지도부 오판 때문이다.
두 번째는 오만이다. 워낙 바닥 정서가 좋다 보니 '공천=당선'이란 유혹이 구성원의 초심을 잃게 했다. 내부 다툼 속에 관료 출신 온건파가 상당수 제거됐고, 그 자리에 친노ㆍ486세력이 들어섰다. 사회적 논쟁을 한쪽의 시각으로 재단하기 일쑤인 '나는 꼼수다' 세력마저 얼굴을 내밀었다. 최고위원과 사무총장은 사퇴했고 전직 대표는 선거대책위 간부직 제의를 거부하는 파열음이 났다. 내부 조율을 이끌지 못한 지도부의 무능이다.
세 번째는 과욕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제주기지 건설 반대를 주장하면서 전선을 확대한 것이 부메랑이 됐다. 두 안건 모두 참여정부 때 시작한 사업으로 민주당 지도부가 문제를 제기하기엔 태생적 한계점이 있다. 때문에 '정권 심판론'이란 화두는 여권의'야당 비판론'과 섞이면서 실종되다시피 했다. 지도부의 전략 미스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민주당은 방향을 잃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민주당의 정체성은 뭔지, 무슨 색깔과 비전을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현정부에 실망한 사람들이 민주당을 응원했다가 그렇게 빨리 돌아앉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밖으론 군소정당에게 끌려 다니고 안으로는 손님 같은 이들에게 당권을 탈취당하는 지경에 몰리며 지지율 2위로 내려앉은 게 오늘날 민주당의 밝지 않은 자화상이다.
그런데도 민주당의 표류는 진행형이다. 총선전이 시작되면서 당 비례대표 후보에 전태일 열사의 누이동생과 부산일보 및 정수장학회 문제의 이슈화를 염두에 둔 한 전직 기자를 앉혔다. 민주당이 이번 총선에서 제일 가치로 여기는 것이 반(反) 유신인지, 반(反) 박근혜인지, 반(反) 정부인지조차 알 수 없게 된 인선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새정치국민회의가 정권 교체를 이룬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건 강력한 리더십으로 여러 세력을 흡수한 뒤 안정적이고 일관된 메시지를 국민에게 전했기에 가능했다. 표 이탈을 염려하거나 반여 정서에만 기대려는 나약함은 없었고 계파 챙기기 같은 술수는 용납되지도 않았다.
민주화란 확고한 신념이 있었고, 여기에 오랜 정치 세월에서 체득한 국가 경영의 노하우도 있었기에 정면 돌파가 가능했다. 그래서 국민은 그런 야당을 선택했다.
지금 민주당에게 이런 호랑이 같은 결기가 있는지 의문이다. 옛날 같은 당당한 정통 야당의 모습이 나와야 하고, 정치 발전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세월만큼 민심의 변화가 빠른 점을 감안하면 시간은 충분하다.
염영남 정치부 차장 liber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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