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공무원 복무규정 2조는 공무원을 '국민 전체의 봉사자'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청와대 개입 의혹이 불거진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및 증거인멸 사건에 연루된 공무원들의 행태를 보고 있자면 국민의 봉사자는커녕 상명하복에만 충실한 '영혼 없는 공무원'에 불과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핵심 보직인 기획총괄과장을 지낸 진경락씨는 현재 1주일 넘게 집을 비운 채 잠적한 상태다. 하지만 검찰과는 연락을 취하면서 도주 의사가 없음을 교묘하게 내비치고 있다. 불법사찰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공직윤리지원관실 1팀의 한 직원도 업무를 핑계로 여전히 취재진과 숨바꼭질을 하고 있다. 나머지 관계자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누구 하나 나서서 당시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불법적인 행태를 고발하는 사람은 아직 없다. 기자들을 모아 놓고는 "내가 몸통"이라고 목소리만 높이다 내뺀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도 마찬가지다.
이러니 사건의 진상에 대해 함구하는 대가로 이들이 돈이나 다른 지원을 받거나 보장받았을 것이라는 의혹이 점점 커져 간다. 청와대 개입설을 폭로한 장진수 전 주무관이 회유 명목으로 받은 돈은 5,000만원이다. 받았다 돌려주거나 당초부터 받기를 거부한 돈까지 포함하면 1억원이 넘는다. 변호사 비용을 지원받은 것은 물론, 평생 직장을 잃은 대가로 청와대 측으로부터 5억~10억원을 제시받았다는 사실도 폭로됐다. 2010년 1차 검찰 수사 때 불법사찰로 기소된 공무원은 7명이다. 3심에 걸친 이들의 막대한 재판 비용은 누가 댔을까,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말단 공무원인 장 전 주무관이 1억원을 넘게 제시받았으니 다른 이들은 도대체 얼마를 받았을까. 당사자들의 침묵 속에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더 한심한 것은 진실을 드러내는 것을 '상부에 대한 배신'이라고 믿는 이들의 태도다. 기자가 취재를 위해 접촉한 사건 관계자들은 장 전 주무관의 폭로로 드러난 사실 앞에서 완강한 부인도, 적극적인 시인도 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사건의 '윗선'에 대한 질문에는 하나같이 "검찰에서 밝히겠다"고 되뇌고 있다. 검찰에 가서 마지못해 털어놓더라도 먼저 나서지는 않겠다는 태도다.
심지어 한 인사는 장 전 주무관을 "아껴준 사람의 등에 칼을 꽂은 배신자"라고 했다. 과연 누구에 대한 배신인가. 국민의 등에 칼을 꽂는 불법사찰을 자행해 놓고는, 뉘우침의 기색은커녕 상관에 대한 충성심만 과시하려 하고 있는 이들을 도대체 뭐라 불러야 할까. '영혼 없는 공무원'이라는 말은 차라리 진부해 보인다.
이성택 사회부기자 highn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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