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서울 핵안보정상회의에 참가한 53개 국가의 국민총생산(GNP)과 인구는 각각 전세계의 90%와 80%를 차지한다. 따라서 표면상으로는 국제사회가 일치 단결해 핵안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각국이 처한 상황에 따라 이해관계가 다르다. 선진국은 가급적 넓은 범위에서 빠른 속도로 핵안보 문제에서 진전을 이루자며 다른 국가들을 보챈다. 반면 개발도상국은 핵안보를 위한 재정이 턱없이 부족한데다 국내적으로 안보, 환경문제가 걸려 있어서 보폭을 맞추기 어려운 형편에 있다.
미국, 러시아는 전세계 고농축우라늄(HEU) 재고 추정치인 1,400톤 가운데 90% 이상을 갖고 있다. 중국, 영국, 프랑스 등 핵보유국에도 상당수의 HEU가 비축돼 있다. 핵보유국은 자국의 HEU는 안전하게 관리되기 때문에 전세계 도처에 불안하게 존재하는 HEU를 없애야 테러 위협을 줄일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반면 개도국이 대부분인 비핵국가의 HEU 보유량은 채 1%에 미치지 못한다. 냉전이 한창이던 1960년대 미국과 러시아가 경쟁적으로 제3국에 지원했던 것이 대부분이다. 이들 국가에서 HEU는 전력발전과 연구∙군사 용도로 요긴하게 쓰이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포기할 이유가 없다. HEU가 테러 방지보다 생존권의 문제인 셈이다.
개도국이 자발적으로 HEU를 폐기하거나 민수용 저농축우라늄(LEU)으로 전환하려 해도 막대한 돈이 든다. 이에 미국은 글로벌위협감지구상(GTRI)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예산을 2010년 3억330만 달러, 2011년 4억3,600만 달러에서 올해 5억 달러로 늘렸다. 바꿔 말하면 미국의 돈줄이 막히는 한 개도국은 언제든 등을 돌릴 수 있는 구조다.
선진국 내부에서도 미묘한 입장 차가 감지되고 있다. 이번 회의에 독일, 영국, 프랑스의 정상은 모두 불참했다. 국내 정치 일정상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미국 주도의 핵안보 체제에 대해 유럽이 견제에 나선 것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한미간 분쟁도 있었다. 한국은 2000년 HEU를 LEU로 바꾸는 저감기술을 개발해 특허를 냈지만 미국이 문제를 제기해 4년여 동안 송사에 휘말렸다. 정부 관계자는 "핵안보정상회의는 미국이 모든 것을 주도하려는 회의인 것 같다"고 말했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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