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상축구장 어떠냐"… 아이디어로 오일달러 캔다
올해 초 카타르를 방문했던 이희범 STX회장은 현지 고위관계자에게 깜짝 아이디어를 냈다. "걸프만에 거대 선박을 만들어 그 위에 축구 경기장을 지으면 어떨까요"
2022년 월드컵을 유치한 카타르는 많은 축구경기장을 지어야 할 상황. 하지만 돈 많은 이 나라가 축구장을 짓는 건 별 문제가 아니다. 고민은 월드컵이 끝나면 이 많은 경기장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있다. 인구가 많은 나라도 아니고, 영국 프리미어리그급 프로축구 리그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 자칫 월드컵이 끝나면 경기장이 쓸모 없는 시설로 전락할 가능성도 있는 게 사실이다.
이 회장은 "선상 축구장을 지으면 그 자체가 관광시설이 될 수 있고 필요할 경우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 축구경기를 할 수도 있어 활용성이 높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카타르 측에선 다소는 황당할 수 있는 이 회장의 제안에 즉답을 피하면서도 "재미있는 아이디어"라고 답했다.
중동엔 지금 투자할 곳이 널려 있다. 중동국가들은 넘쳐나는 오일달러를 바탕으로, 거대인공도시 두바이에 버금가는 대형프로젝트들을 속속 발주하고 있다. 발전소나 담수화(바닷물을 식수로 바꾸는 장치) 설비 같은 중후장대 시설부터, 미래형 첨단신도시 건설, IT인프라 구축까지 범위는 무궁무진하다. 여기에 월드컵 특수도 있고, 이라크 리비아 등에선 복구사업도 무궁무진해 국내기업들로선 중동으로 달려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삼성은 삼성엔지니어링을 통해 이라크 전후 복구 사업참여를 준비 중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바레인 등을 거점 삼아 중동 진출에 성공한 삼성엔지니어링은 이라크에서 발주되는 원유 및 가스 플랜트사업에 눈독을 들리고 있다. 이미 10억달러 규모의 이라크 웨스트꾸르나 가스-오일 분리 플랜트를 수주했으며, 지난달엔 UAE 국영 가스회사인 가스코로부터 니트로겐 가스 플랜트 공사도 따냈다.
중후장대기업으로 완전 변신에 성공한 두산은 담수화 시설 및 발전소 프로젝트를 집중 공략하고 있다. 이와 관련, 두산중공업은 사우디아라비아 국영전력회사가 발주한 '사우디 라빅6 석유화력발전 프로젝트'에 단독으로 참여하게 됐다.
앞서 두산중공업은 사우디아라비아 담수청으로부터 1조7,000억원 규모의 해양담수화 플랜트인 '라스 알 카이르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두산중공업이 그 동안 중동 전역에서 완공한 해수담수화 시설은 무려 22개에 달한다. 두산중공업 관계자는 "어느 지역이든 특화된 진출전략이 중요하다"면서 "핵심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담수화쪽엔 지금도 러브콜이 이어지고 있으며 점차 발전소 건설쪽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은 현대엠코 현대제철 현대건설 등 3개 계열사가 컨소시엄을 구성, UAE의 에미리트 철강산업이 발주한 무사파 철강 플랜트 3단계 확장 프로젝트 입찰에 참여했으며 수주가 유력시되고 있다. 연간 140만톤 규모로, 사업비는 10억 달러에 달한다. 현대차 그룹 관계자는 "중동지역에서 가장 인지도 높은 현대건설을 인수한 이후 계열사끼리 컨소시엄을 맺고 진출하는 사실상 첫 번째 프로젝트"라며 "시너지효과가 높아져 플랜트, 발전소 등 다양한 영역을 확대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한화그룹도 사우디에 석유화학 공장설립을 추진하는 등 중동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문제는 중동으로 달려가는 게 한국기업들 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마지막 남은 블루오션인 이 '샌드오션'지역에는 지금 미국 유럽 일본 등 각국 기업들이 수주를 위해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이젠 우리나라도 1970~80년대 1차 중동붐 때와 달리 단순 토목공사를 수주할 단계는 벗어난 만큼 부가가치 높은 장치산업과 첨단시설 쪽에 집중하고 있는데, 선진국들이 강점을 지닌 분야라 경쟁도 그만큼 치열하다.
STX 관계자는 "이젠 가격으로 수주하던 시대는 지났다"면서 "중동 수주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우리기업이 잘 하는 분야에 집중해야하고 무엇보다 '선상 축구장'처럼 남들은 생각하지 못하는 역발상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인호기자 yih@hk.co.kr
■ 건설 핵심인력만 1만명 파견… IT 두뇌·장년층 재취업 '블루오션'
우리나라 기업들이 중동에서 따오는 건 일감만이 아니다. 수주와 함께 일자리도 함께 창출된다.
현재 중동지역에 파견된 우리나라 인력은 건설부문만 약 1만 명. 업계에서는 해마다 2,000명 정도의 신규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추정한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1970년대 1차 중동 붐때는 수만명 건설인력이 나갔지만 지금은 단순인부는 제3국 근로자를 쓰기 때문에 관리인력과 핵심기술인력만 나간다"며 "일자리의 수는 줄었지만 질은 더 높아졌다"고 말했다.
건설 이외 분야도 마찬가지. 특히 요즘은 IT 등 첨단분야 수주가 많아, 고급인력 수출도 많다. 이태희 고용노동부 인력수급정책관은 "중동 국가들은 건설이나 IT 자원개발 서비스업종 등에서 해외인력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려는 정책을 쓰고 있어 고급인력들에게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젊은층 뿐 아니라 50~60대의 재취업시장으로도 각광받고 있다. 숙련도가 높은 데다 상대적으로 성실해 현지인들의 선호도가 높다는 것. 국내에서 막힌 일자리를 중동에서 뚫을 수 있다는 얘기다.
정부도 이에 따라 호주 캐나다 일본 중국 등에 편중됐던 해외취업자를 중동지역으로 확대키로 큰 방향을 정하고, 오는 5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중동취업 박람회'를 개최한다. 지난 11일에는 중동지역 취업 인턴 봉사에 총 1,247명의 진출을 돕겠다고 밝혔다. 업계 관계자는 "중동지역의 근무환경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진 만큼 취업시장의 블루오션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다만 생소한 문화와 언어 등으로 애를 먹을 수 있어 충분한 사전 준비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환구 기자 red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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