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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육아휴직자들이 승진할 수 있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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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육아휴직자들이 승진할 수 있는 사회

입력
2012.03.26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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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봄 한독약품 정기 인사에서 육아휴직 중인 여직원 5명이 승진했다. 영업사원 3명, 생산공장 직원 1명, 본사 내근직 1명. 작년 9월 첫 아들을 출산하고 육아휴직 중인 한 직원은 당연히 승진이 안 될 줄 알았단다. 아이를 키우며 집에 있는데 승진이 된다는 건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사실 최종 승진 평가 회의에서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9개월밖에 일하지 않았는데 1년을 일한 직원과 같이 평가해야 하는 게 옳은 지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휴직자를 대신해서 더 일하는 직원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도 문제였다. 휴직 끝내고 복귀한다고 장담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승진이 마땅한 가에 대한 의문도 있었다. 이럴 때 CEO의 마음은 시험을 당한다.

나는 되물었다. "지난 9개월 동안의 업무 성과가 어떠냐"고. 이 직원은 9개월은 물론 최근 3년의 평가 성적이 높았다. 그렇다면 이 직원은 승진해야 맞다. 왜냐하면 승진이란 지난 2~3년간의 업무 성과를 평가하는 것이고 앞으로의 기여도를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육아휴직 중이라 승진이 안 되면 내년엔 휴직 동안 성과가 없어서 공백이 생기지 않는가.

물론 팀장과 임원들은 여직원이 육아휴직을 가게 되면 업무 공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남성 임원들만이 아니다. 여성 관리자도 똑같은 고민을 하게 된다. 육아휴직을 가는 여성인력을 어떻게 평가하고 육성해야 하는가 하는 혼돈은 아직 우리 사회에서 육아휴직이 낯설기 때문이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일하는 여성은 승진을 위해 출산을 미루고, 출산해도 3개월 출산휴가만 갔다가 바로 돌아와서 경력을 이어가느라 안간힘을 쓴다. 워킹맘으로 힘들게 팀장이 됐다가도 어느 날 "육아에 전념하겠습니다"하고 사표를 던지는 경우도 꽤 된다.

그럼에도 나는 왜 여성인재를 육성하는가. 우리 같은 중견기업에서 우수한 여성인력을 계속 유지하는 것은 필수다. 상대적으로 우수한 남성인력이 대기업, 금융계 등으로 쏠리는 한국 사회에서 중견기업을 선택한 여성인재는 유리 천장에 갇히지 않고 혁혁한 성과를 낸다. 또 저출산 때문에 전체 인구가 줄어드는 것은 기업 차원에서도 큰 재앙이다. 제품을 팔아 줄 미래 소비자가 없으면 기업이 존재할 수 있겠는가. 그렇기에 기업이 남녀평등고용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은 단지 여성문제, 노동문제가 아니다.

실제 우리 회사는 꾸준히 여성인력을 육성한 결과 대통령표창을 받고 가족친화경영 인증기업으로 선정되면서 여직원들이 편한 분위기에서 육아휴직을 가고 있다. 또 어느 본부에서는 동시에 3명이 육아휴직을 가는 경우도 있었다. 그 중 한 명은 변호사였는데, 대체인력을 뽑아 업무를 진행했다. 이 때문에 힘든 쪽은 인사팀이다. 1년만 일할 우수한 인력을 뽑아야 하는데, 쉽지 않다. 하지만 이 또한 고용을 늘리는 것이고, 계약직원으로서는 업무를 익힐 기회가 되기 때문에 전체 사회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 회사는 육아휴직을 간 여직원들이 100% 복직했다. 또 출퇴근 시간을 조정해 탄력근무제로 근무하는 여직원 14명 중 5명이 우수사원으로 뽑히기도 했다. 이것이 회사와 직원 사이에 싹튼 신뢰의 결과라고 믿는다. 회사가 '여성인력을 우대한다'는 믿음이 아니라, '우수 인재를 양성한다'는 믿음 말이다. 남자건 여자건 우수 인재를 키우기 위해 회사는 공정한 경쟁을 시키고, 공평한 평가를 하며, 여성이 출산하고도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회사 문화를 만드는 것. 이렇게 '인재 경영'에 집중하는 것이 경쟁력이다. 기업의 가장 중요한 자산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승진 발령을 받은 여직원들은 행복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버거운 여성고용의 현실이 있기에 이런 결정이 전체 회사를 이롭게 할까 주시하는 눈들이 있다는 것을 무겁게 느껴야 할 것이다. 나도 내년 승진 심사에서 올해처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

김영진 한독약품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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