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경영방침요? 똑같은 물건은 만들지도, 팔지도 말자입니다."
올해 나이 서른의 박길종씨. 수수하다 못해 앳돼 보이는 청년이지만 어엿한 가구가게 사장님이다. 모든 제품은 주문 제작하고, 한번 만든 제품과 같은 모양으론 절대 다시 만들지 않기로 소문이 난 사람이다. 그래서 온라인 상에서는 '박가이버'로 유명세도 탔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지만 넘쳐나는 손재주를 주체할 수 없어 2년 전부터 붓 대신 톱과 망치를 들었다. 망가진 옷장을 탁자로 만들어 달거나 부서진 책상을 의자로 만들어 달라는 주문은 박씨에게 이상하지 않다. 그런 그가 가구 가게를 낸다고 해서 25일 현장을 찾았다.
서울 용산구 보광동의 골목 구석에 자리잡은 1층짜리 허름한 건물. 개점 준비 공사가 한창인 가게에서는 도무지 가구점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가구점에서 풍기는 화려함, 세련미 따위는 찾아 볼 수 없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가구를 보여주는 곳인데, 가게도 좀 독특해야 되지 않겠어요?" 가게에 걸릴 간판도 마찬가지. 구멍가게 이름도 아니고 간판에는 덩그러니 '길종상가' 네 글자뿐이다. 제 손을 거친 가구에 자신이 있었던 만큼 그냥 제 이름을 박아 넣었다. 그는 "2010년부터 인터넷에 같은 이름의 사이트를 열어 가구, 조명 제작 등의 작업을 해왔다"며 "그 계보를 이어간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세상에 하나뿐인 물건을 만들어 내는 사람을 우리는 흔히 예술가라고 부른다. 하지만 박씨는 "나는 예술가나 디자이너가 아니다"고 했다. "다만 필요한 물건을 만드는 사람"이란다.
그의 설명을 들으면 그 물건들은 가히 명품이요, 박씨는 장인이다. "주문을 받고 재료를 사와서 디자인하고 제작하는 전 과정을 혼자 진행합니다. 단 한 사람을 위한 하나의 물건을 한 사람이 만드는 것이죠. 의뢰인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수작업으로 한 땀 한 땀 만듭니다." 제작 과정서부터 해당 가구만의 독특한 의미와 이야기가 쌓이는 셈이다. 책상 하나를 만드는 데 드는 시간은 약 1주일, 그 사이 의뢰인과는 2시간 이상의 대화가 오간다.
모든 공정은 철저하게 주문자 중심으로 돌아간다. 가구 제작 의뢰를 받으면 먼저 의뢰인의 집을 방문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가구가 놓일 장소를 꼼꼼히 살펴보고 이런 저런 질문을 던져서 물건을 사용할 주인의 특성을 파악하죠." 주인이 왼손잡이는 아닌지, 선호하는 특정 색깔이 있는지 등등. 그는 "주인의 취향과 사연을 반영하는 까닭에 백이면 백, 다른 의자가 나온다"고 설명했다.
완성이 되면 박씨와 주문자 사이엔 희비가 엇갈린다. "그러면 안 되는데 돈을 받고 물건을 인도할 땐 짠한 게 있어요." 그만큼 제작과정에 혼신을 다했다는 이야기. 그래서 그는 주문자에게 '평생품질보증서'를 발부한다. 자식이나 다름없는 그 가구를 말 그대로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것이다. "쓰다 보면 필요가 없어질 때가 있을 겁니다. 그때 가져 오면 다른 가구로 리폼해주겠다는 약속이죠." 이런 장인정신 때문인지 5월까지 주문이 밀려 있다. 직원 하나 써서 욕심을 낼 법도 했지만 박씨는 싫다고 했다. "사는 것도 남들처럼 살고 싶지 않네요."
글·사진 손효숙기자 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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