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초저녁 서쪽 하늘이 장관이다. 유난히 고단하고 지치고 바쁜 시절을 살아내느라 하늘을 올려다볼 여유조차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잠시 호사를 부려서라도 밤하늘을 한번 쳐다보라고 강하게 권하고 싶다. 해가 지고 아직 밤이 온전히 몰려오지 않아서 다른 별들이 채 보이지 않는, 붉은빛으로 물들어가고 있는 서쪽 하늘에는 빛나는 두 별이 떠 있을 것이다. 밝은 것이 금성이고 조금 덜 밝은 것이 목성이다. 그 사이에 날렵한 초승달이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예쁜 광경이기도 하지만 누구에게는 위안이 되기도 하고 또 다른 누구한테는 꿈을 주기도 할 것이다.
사실 금성이나 목성이나 달은 스스로 빛을 내지는 못한다. 햇빛을 반사해서 빛나는 것뿐이다. 이들이 다른 별이 보이기도 전에 초저녁부터 먼저 밝게 빛나 보이는 것은 단지 지구에 (우주적인 스케일로 봤을 때) 아주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목성이 금성보다 훨씬 더 크지만 더 어두운 것도 역시 지구로부터 떨어진 거리가 그 만큼 더 멀기 때문이다. 물론 밝기를 결정하는 반사율 같은 다른 요소들도 있겠지만 그 보다는 떨어진 거리의 영향이 크다. 달은 지구보다도 작은 천체지만 하늘에서 태양 다음으로 밝다. 물론 가깝기 때문이다.
밤이 깊어지면 하나 둘씩 밤하늘에 모습을 드러내는 희미하게 빛나는 것들 대부분이 태양처럼 스스로 빛을 만들어서 내는 별들이다. 별의 내부에서는 수소와 수소가 합쳐지는 핵융합 작용이 일어나는데 그 과정에서 생성된 에너지가 빛으로 뿜어져 나온다. 한편 행성이나 위성은 이런 핵융합 과정을 겪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빛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별의 빛을 반사하면서 빛나게 되는 것이다. 밤하늘의 어두운 별들은 단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어둡게 보일 뿐이다. 우리 눈에 보이는 대로의 별의 밝기를 겉보기 등급이라고 한다. 흔히 1등급 별, 2등급 별, 이렇게 부를 때 등급이 바로 겉보기 밝기의 척도를 나타낸다. 그런데 겉보기 등급이 같은 별이라도 원래 더 밝은 별이 있고 더 어두운 별이 있을 것이다. 원래 더 밝은 별이 좀 더 멀리 덜어진 곳에 있고 더 어두운 별이 좀 더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으면 두 별의 겉보기 밝기는 같아 보일 것이다. 반대로 원래 밝기가 같은 별이라도 우리로부터 떨어진 거리가 다르면 겉보기 밝기에 차이가 날 것이다.
따라서 별들의 진짜 특성을 비교하려고 한다면 이처럼 겉으로 보이는 특성을 사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천문학자들은 모든 별들의 진짜 밝기를 공평하게 비교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냈다. 모든 별들이 우리로부터 같은 거리에 있다고 가정을 했을 때 얼마나 밝은지를 계산해 보자는 것이었다. 모든 별들을 미리 정한 특정한 거리(10pc)에 옮겨 놓고 눈으로 봤을 때의 겉보기 밝기를 그 별의 절대 등급이라고 정한 것이다. 물론 어떤 별의 절대 등급을 구하기 위해서는 그 별의 겉보기 등급 뿐 아니라 그 별까지의 거리도 알아야 한다. 별까지의 거리는 다른 관측을 통해서 구하고 있다. 태양은 하늘에서 제일 밝게 보이지만 절대 등급으로 순위를 먹인다면 사실 좀 어두운 별에 속한다.
겉보기 밝기만 본다면 별의 진짜 밝기를 알 수 없듯이 사람도 그냥 허울만 봐서는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없을 것이다. 선거가 코앞이다. 번거롭지만 찾아보면 정보는 넘쳐난다. 겉보기 등급에 현혹되지 말고 각 후보까지의 거리를 먼저 측정하자. 그런 후 절대등급을 매겨서 그 사람의 진짜 밝기를 확인 해보고 투표를 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진짜 밝게 빛날 별들만을 골라내야 한다. 어떤 후보가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앵무새처럼 옮기기만 하는지 스스로 빛을 내는 진짜 별처럼 개인적인 열정과 소신을 갖고 있는지 철저하게 따져볼 일이다. 4월 11일. 고단한 삶을 청산하고 별 좀 쳐다볼 여유를 갖기 위해, 모두 투표하자. 그러고서야 이 혼탁한 세상을 걷어내고 그 별빛 아래에서 평화로운 행복 운운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명현 SETI코리아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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