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컬링의 첫 출발은 임대였다.
대한컬링연맹은 2002년 세계컬링연맹으로부터 스톤 17세트를 임대 받았다. 세트당 가격은 2,400만원선. 전국 12개 시∙도가 한 세트씩 나눠가졌다. 남은 5세트는 대표팀의 국제 대회 준비용이었다. 워낙 고가의 장비라 교체는 엄두를 못 냈다. 전용 신발(18만~25만원)과 스위핑 브러시(12만~13만원) 구입비용 마련도 만만치 않았다.
명색이 국가대표팀이지만 낡은 운동화를 신고 청소용 빗자루를 들 수밖에 없는 이유다. 가장 중요한 장비인 스톤은 10년이나 대표팀의 손때가 묻었다. 오래 사용한 탓에 스톤의 밑바닥 이가 깨져있고, 그만큼 무게도 가벼워졌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스톤 손잡이에 전자핸들을 부착해야 한다. 전자핸들은 투구할 때 호그라인을 넘었는지, 넘지 않았는지 인식하는 장치다. 호그라인을 넘으면 빨간 불이 들어오고 파울이 선언된다. 대표팀이 사용할 전자핸들 5세트를 구매하려면 1억4,000만원이 든다. 연맹 살림자체가 어려운데 전자핸들 구매를 요구할 수는 없었다. 때문에 선수들은 전자핸들을 부착하지 않은 채 연습해야 했다. 호그라인을 넘었는지 여부를 전혀 알 수 없었다. 오직 감에 의지한 채 투구를 해야 한다. 빙판은 녹녹치 않았다. 한국 여자대표팀은 2002년 세계선수권에 첫 출전해 9전 전패, 2009년 3승8패(10위), 2011년 2승9패(11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태극 낭자들은 얼음판 위에서 한 우물만 팠다. 올림픽 출전이라는 열망이 가슴 속에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이 열망 하나가 한국 여자 컬링대표팀의 기적을 만들었다. 한국 여자컬링이 네 번째 출전한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사상 처음으로 동메달 결정전에 올랐다.
임대에서 출발한 한국 컬링 역사 설움을 날리기에 충분했다.
한국은 25일(이하 한국시간)오전에 열린 예선에서 3위(8승3패)로 4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4강 PO에서 한국은 2008년 우승팀 캐나다를 상대로 마지막 10엔드에서 2점을 뽑아내 4-3 짜릿한 역전승을 거두고 결승진출까지 눈앞에 뒀다. 한국은 그러나 이어 열린 준결승에서 스위스에 6-9로 석패했다. 8엔드까지 6-5로 앞섰으나 9, 10엔드에서 4점을 헌납해 무너졌다. 한국은 결국 동메달 결정전으로 밀려 26일 새벽 캐나다와 다시 맞붙는다.
한국은 이번 대회 4강에 올라 2014년 소치올림픽 출전 가능성을 높였다. 하지만 눈높이는 2018년 평창올림픽에 맞춰져 있다.
박순환 대한컬링연맹 전무이사는 25일 "컬링은 과학적이고 세심한 운동이다. 낡은 장비와 실제 대회 때 쓰는 장비 차이가 크다. 감각이 달라 경기력에 영향을 미친다"며 "컬링 선진국과 동등한 경기를 벌일 수 있도록 장비 보급이 우선이다. 그러나 지원이 부족해 어떻게 해볼 수가 없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이어 "전용경기장이 만들어지면 평창올림픽 금메달도 노려볼만하다"고 강조했다.
김지섭기자 oni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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