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3일 차기 세계은행 총재로 한국계 김용(52) 다트머스대 총장을 지명한 데 대해 세계 언론들도 깜짝 놀라는 분위기다. 김 총장은 그간 한 번도 하마평에 오르지 않았던 인물. 전문가들은 오바마가 '아시아계 비 경제전문가'인 김 총장 카드를 선택한 것은 글로벌 경제의 역학구도는 물론, 세계은행의 역할 변화까지 감안한 다목적 포석이라고 분석한다.
의사 출신 은행장, 왜?
김 총장의 직업은 의사이자 인류학자. 그는 지난 20년간 하버드대 의대 교수를 지냈다. 흔히 은행장하면 떠올리는 경제ㆍ금융 전문가와는 맞지 않는 이력이다. 연결고리는 그의 사회활동에 있다. 그는 중남미 등 빈국의 결핵퇴치와 보건환경 개선 운동을 벌이며 세계보건기구(WHO) 에이즈 국장도 역임한 '구호 전문가'. 오바마 대통령은 김 총장을 "개발 전문가"(development professional)로 소개하면서 "이제 세계은행 총재는 전세계에서 개발의 역할을 깊이 이해하는 인물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지금까지 세계은행 총재 11명 가운데 4명이 미 국무부나 국방부 장ㆍ차관 출신의 비경제 관료였을 만큼 '경제 외 능력'도 중요시되는 자리다. 금융 지원을 주로 하는 국제통화기금(IMF)과 달리, 개발도상국에 원조나 자문을 통해 교통ㆍ식량ㆍ교육ㆍ의료 같은 종합 인프라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김 총장의 이력은 세계은행 고유업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세계은행 달라지나
김 총장 지명에는 세계은행의 역할 변화를 주문하는 '최대 주주' 미국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오바마 정부가 글로벌 빈곤퇴치 차원에서 공 들여 온 유엔의 새천년개발목표(MDG)가 지지부진하자 세계은행을 통해 이를 보완하려 한다는 것이다. 세계 경제가 갈수록 통합되면서 미래 글로벌 소비와 생산의 근간이 될 개도국의 인구 유지가 큰 관심사로 떠올랐고, 이를 위해 이들 나라의 보건ㆍ의료 환경 개선이 필수적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세계 140여 개국 정상들은 2010년 유엔에서 정상회의를 갖고 2015년까지 여성ㆍ어린이 보건 분야에 400억달러 기금을 마련키로 합의했으나 잇단 경제위기로 재원마련에 어려움을 겪는 실정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MDG 8대 목표의 대부분이 보건ㆍ의료 환경 개선을 통한 빈곤퇴치"라며 "김 총장의 전문지식을 활용해 세계은행이 이 분야에서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해 달라는 주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서방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김 총장이 성장과 기후변화 문제보다 보건, 교육 분야에 치우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고 전했다.
재확인된 중국 파워
경제계에선 김 총장 지명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당선보다 훨씬 파격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인다. 대륙간 안배가 작용하는 유엔 수장과 달리, 66년간 미국의 주류 백인들이 독점해 온 자리에 최초로 유색인, 그것도 아시아계가 지명됐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갈수록 국제경제에서 영향력을 키우는 개도국, 특히 중국의 입장이 감안된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ㆍ유럽의 주도권 나눠먹기에 반대해 온 개도국들은 이번에 각각 중남미, 아프리카 후보를 내세웠으나, 결국 미국의 선택은 아시아를 배려한 카드였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24일 즉각 "고무적 선택"이라며 화답했다.
김 총장 지명은 우리나라에도 호재다. 정부 관계자는 "각종 개발사업에 한국의 개발 경험을 적극 적용할 수 있고, 이 과정에서 우리 기업들의 참여나 국내 인재들의 세계은행 진출도 활발해 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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