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 제조에 쓸 수 있는 고농축 우라늄이 국내에 밀반입됐다.'
지난해 초 경찰은 이런 첩보를 입수하고 수사에 나섰다. 핵 통제 관련기관들에도 비상이 걸렸다. 다행히 경찰은 중국에서 항공소포를 보내 우라늄 광석을 몰래 들여온 일당을 적발했고, 이 광석의 성분 분석 결과 핵분열을 일으키는 우라늄 235의 양은 0.7%에 그쳤다. 같은 해 4월 이 같은 내용을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보고한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KINAC) 관계자는 "농축하지 않은 천연 우라늄 광석과 비슷한 수준"이라면서도 "정말 고농축 우라늄이었다면 심각한 위협이 됐을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한국을 비롯한 미국, 유럽 등 대부분 국가에선 감마선을 이용해 핵물질을 탐지한다. 항구나 공항에 도착한 화물상자에 감마선을 쪼여 안에 어떤 물질이 있는지 검사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핵물질을 납으로 두껍게 감싼 채 들여오면 감마선으로는 이를 알아내기가 어렵다. 감마선은 납을 투과하지 못하고 굴절되기 때문이다. 윤완기 KINAC 핵안보센터장은 "감마선의 굴절이 많을 경우 뭔가 수상한 물질이 있을 수 있다고 보고 사람이 직접 화물상자를 열어 조사하지만 어디까지나 간접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핵물질 탐지에 감마선 대신 뮤온을 쓰려는 연구가 한창이다. 뮤온은 우주에서 온 '우주 입자'다. 우주 입자는 지구로 끊임없이 들어오는데 지상 15㎞에선 양성자가 가장 많다. 하지만 이 입자는 대기 중의 여러 물질과 반응해 사라지고 지표면까지 도달하는 우주 입자 가운데 대다수는 뮤온과 중성미자다. 두 입자 모두 다른 물질과 잘 반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뮤온은 1㎡ 면적에 분당 1만개가 떨어진다.
KINAC과 공동으로 올 초부터 뮤온을 활용한 은닉 핵물질 탐지 장비를 개발 중인 김귀년 경북대 물리학과 교수는 뮤온이 가진 전기적 성질에 주목했다. 뮤온은 양성자를 가진 물질을 만나면 튕겨져 나간다. 양성자가 전하를 띤 뮤온을 밀쳐내기 때문이다. 이때 튕겨져 나가는 각도(굴절각)는 물질의 양성자 수가 많을수록 크다.
실제 각각 양성자 235개, 239개를 갖고 있는 우라늄235, 플루토늄239와 부딪힌 뮤온은 1.6도 굴절된다. 두 방사성 물질은 핵무기 제조에 쓰인다. 반면 아연(양성자 수 30개)의 굴절각은 0.68도, 물(양성자 수 10개)은 0.15도다. 굴절각을 재면 어떤 물질이 뮤온을 굴절시켰는지 추정할 수 있다는 얘기다.
굴절각을 측정하기 위해 김 교수는 화물상자가 지나는 위아래에 센서를 설치한다는 계획이다. 뮤온은 상단 센서→화물상자→하단 센서를 거쳐 지표에 도달하게 된다. 뮤온은 지표까지 일정한 각도로 떨어지기 때문에 화물상자에 핵물질 등이 없으면 두 센서가 측정한 뮤온의 입사각은 거의 같다. 김 교수는 "두 센서가 감지한 뮤온의 입사각이 달라졌다면 화물상자를 거치면서 굴절됐다는 뜻"이라며 "굴절된 각도를 측정하면 해당 물질이 뭐고 화물상자의 어디쯤에 있는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미국 로스알라모스 국립연구소(LANL) 연구진은 2003년 이와 비슷한 방법으로 대형트럭에 실린 크기 10㎤의 우라늄 덩어리를 찾았다고 과학학술지 <네이처> 에 발표했다. 네이처>
뮤온을 활용한 핵물질 탐지는 연구개발 비용 등을 이유로 미뤄지다가 최근에야 조금씩 연구되고 있다. 10년 전 LANL이 가능성을 보여줬음에도 아직까지 뮤온을 이용한 탐지 장비가 상용화되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다. 김 교수는 "뮤온의 굴절각을 정확히 측정하는 센서를 개발하는 게 핵심"이라며 "이 방법을 활용하면 납덩어리 속에 숨긴 핵물질을 놓칠 수 있는 감마선 탐지법을 보완해 핵 안보를 더욱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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