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Cover Story/ 프로게이머 장민철, 그들의 어두운 그늘을 말하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Cover Story/ 프로게이머 장민철, 그들의 어두운 그늘을 말하다

입력
2012.03.23 17:32
0 0

■ 프로게이머 장민철 "프로게이머가 멋있어 보이나요 성공 바늘구멍…"

장민철씨. 올해 나이 스물한 살. 2010년 8월부터 작년 말 말까지 3억6,000만원을 벌었다. 고향인 천안에 30평대 아파트도 하나 장만했다. 벌이로만 보면 재벌그룹 고위임원 수준. 이 나이에 이런 큰 돈을 벌 수 있는 건 잘 나가는 아이돌 스타뿐 아닐까.

그는 프로게이머다. 모의전략게임 '스타크래프트2'에서 프로토스라는 종족을 즐겨 다루는 그는 프로토스 황제라는 뜻의'프황제'로 불린다. 지난해 글로벌 스타크래프트2 리그(GSL)와 스톡홀름 인비테이셔널 우승, 북미스타리그와 MLG올란도 준우승 등 화려한 전적을 쌓았고 올 들어서도 지난 1월 독일 홈스토리컵과 이달 10일 인텔 주최 독일 IEM 대회에서 연거푸 우승트로피를 거머쥐었다. 게임에 열광하는 젊은 층 사이에서 그의 인기는 아이돌 못지 않다.

하지만 그는 '제2의 장민철'을 꿈꾸는 청소년들을 말리고 싶다고 했다. 나중에 아들을 낳아도 게이머로 키울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프로게이머 중에 성공하는 사람은 10% 미만이에요 아예 인생 자체가 망가질 수도 있어요."

장씨는 중학교 2학년때 프로게이머들을 배출한 클럽 'SIZ클랜'에 가입하면서 본격적으로 게임을 배웠다. 여기서 준(準)프로게이머 대회에 나가 우승도 했다.

하지만 드래프트에서 고배를 마셨다. 프로게이머가 되려면 프로게임단이 소속 선수를 선발하는 드래프트를 통과해야 하는데, 실력이 전부만은 아닌 게 현실이다. "프로게임단은 연예기획사와 비슷해요. 게임실력보다 얼굴이 잘생기고 연예인 끼가 있으면 뽑혀요. 그래서 감독 눈에 들려고 드래프트때 춤도 추고 노래까지 불러요."

드래프트 탈락으로 프로게이머로 가는 직행티켓을 잡지 못한 장씨는 결국 2008년(고2때) 지금은 사라진 MBC게임단 '히어로팀'에 연습생으로 신분으로 들어갔다. 연봉도 없는 1년여의 고생스런 숙소생활 끝에 겨우 프로게이머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말이 프로이지 별로 달라지는 건 없었다. 신입 프로게이머의 연봉은 연 600만원. 군대 신병처럼 온갖 궂을 도맡아 해야 한다.

숙소생활은 '닭장'과도 같았다. 훈련시간은 오전 11시부터 새벽 3시. 오로지 게임만 해야 한다. 학교도 못 가고, 친구도 만날 수 없고, 심지어 인터넷 검색도 금지된다. '게임기계'로 철저히 훈련되고 길들여지는 것이다.

학력 때문에 일부 프로게임단은 편법까지 쓴다. "서울의 몇몇 중ㆍ고등학교는 가지 않아도 출석을 인정해줘요. 시험만 보면 중ㆍ고교 졸업장은 받을 수 있어요." 장 씨도 그런 식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 대학 역시 e스포츠학과가 있는 일부 대학은 프로게이머 특별전형이 있어서 수능시험을 보지 않아도 쉽게 입학할 수 있다.

프로게이머의 직업적 생명은 군대 가기 전까지다. 한 달만 연습을 쉬어도 차이가 벌어지는데 2년의 입대공백은 도저히 회복 불가능하기 때문. 그러다 보니 군대를 다녀오면 프로게임단 코치나 게임방송 해설자로 빠지게 되는데, 그나마 스타급 유명선수 출신에게만 돌아가는 게 현실이다. 막노동을 하는 일부 전직 프로게이머도 있다고 했다.

"많은 프로게이머들이 상처를 안고 살아갑니다. 오로지 게임만 하다 보니 낯가림이 심하고 폐쇄적 성격을 갖게 돼 나중에 사회적응을 잘 못합니다. 스타급 선수들은 과대망상에 빠지기도 하구요. 게다가 어깨 손목 목 할 것 없이 몸도 성한 데가 없지요."

프로게임단 생활에 염증을 느낀 그는 결국 지난 2010년 스타크래프트2 선수로 독립했다. 스타크래프트2는 스타크래프트1과 달리 게임단에 들어가지 않아도 누구나 자유롭게 시합할 수 있는 개방형 게임이다. 그는 1년에 15번 가량 해외게임에 출전하고 있으며, 외국인 위주로 트위터 팔로어만 2만7,000여명에 이를 만큼 세계적 인기를 얻고 있다. 올해엔 고려사이버대 영문학과에 입학했다.

프로게이머로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지만 그는 늘 불안하고 한다. 미래에 대한 걱정 때문이다. "프로게이머는 스물한두 살 때가 전성기에요. 나이가 들면 손도 느려지고 머리회전도 떨어져 노인 취급을 받지요. 저도 군대 다녀오면 사업이나 공부하면서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습니다."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 "저 손놀림 좀 봐" "물리쳐" 어느새 손에 땀 흠뻑

지난 주말인 17일 낮 12시 서울 용산구 아이파크몰 e스포츠 상설 경기장. 국내 대표 e스포츠리그(온라인 상에서 벌어지는 게임)인 'SK플래닛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 시즌1'의 준플레이오프전이 이 곳에서 열려 평소보다 많은 인파가 몰렸다. 이들은 경기를 좀 더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 몰 개장시간인 10시30분부터 길게 줄을 섰다.

스타크래프트1이 예전만 못하다곤 하지만 경기장의 열기는 놀라울 정도로 뜨거웠다. 모의 전략 게임 스타크래프트가 국내에 상륙한 것은 1998년 4월. 인간의 후예인 '테란', 정체불명의 괴물 '저그', 고차원 지능을 지닌 우주 종족 '프로토스'등 3개 종족이 우주공간에서 벌이는 전투가 게임의 기본 뼈대다.

어느덧 15년차를 맞는 장수게임이지만 현재까지 450만장의 게임패키지가 팔려나가며 '국민게임'으로 자리잡았다. 2010년 스타크래프트2 등장 이후에도 스타1에 대한 국내 게임 애호가들의 애정은 식지 않고 있다.

이날은 정규시즌 3,4위인 KT롤스터와 CJ엔투스의 준플레이오프 경기 첫날. 100여개의 좌석은 일찌감치 채워졌고, 자리를 구하지 못한 팬들은 뒤에 서서 화면을 보며 게임에 빠져들었다.

20대 초반의 남성들이 많았지만 교복을 입고 온 여고생부터 20,30대 커플, 부모와 함께 온 초등학생, 외국인들까지 다양했다. 영국 노팅엄에서 경기를 보러 왔다는 푯말을 든 팬도 눈에 띄었다.

양팀 선수들이 등장하자 경기장은 관객들의 함성으로 떠나갈 듯 했다. "이영호다!" "신상문이다!"선수가 등장할 때마다 이름을 부르며 카메라와 휴대폰을 꺼내 셔터를 눌러댔다.

낮 12시6분. KT롤스터의 주성욱과 CJ엔투스의 조병세의 첫 경기가 시작됐다. 왼편 KT 응원석에서 "주성욱 화이팅!"을 외치자, CJ 응원석에선 "조병세 화이팅!"으로 응수했다. 앞에 나란히 앉은 4명의 여성들이 아이패드 화면으로 각각 'KT·롤스타·힘을·보여줘'라는 문구를 보여주는가 하면 KT롤스터의 팀 수건을 펼쳐 보이는 등 응원을 주도하자, 열기는 더욱 고조됐다. 첫 경기는 13분만에 종료됐다. 주 선수의 본진에 진입해 다수의 일꾼을 잡아내 피해를 입힌 후 앞마당을 장악한 조 선수의 승이었다.

이어 정규시즌 다승왕과 최우수선수(MVP)를 거머쥔 최고의 스타인 KT롤스터의 이영호가 등장하자 관객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이 선수의 빠른 손놀림과 뛰어난 전략에 관객들은 열광하고 환호하며 박수를 쳤고, 때로 실수라도 하면 마치 자신이 한 것처럼 탄식과 아쉬움을 토해내며 게임에 몰입해 들어갔다. CJ엔투스의 김준호 선수와 겨룬 두 번째 경기에서는 이영호 선수의 승. 먼저 4승을 해야 이기는 1차전의 결과는 KT롤스터가 첫 경기를 내준 뒤 내리 4경기를 따내며 승리했다.

사람들이 경기장을 찾아 스타크래프트를 즐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20,30대라면 누구나 한번쯤 해 봤을 정도로 익숙한 게임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날 대회장을 찾은 이들도 장수게임인 만큼 예전부터 스타크래프트를 접했던 경우가 많았다. 4년 전부터 게임을 해왔다는 김성수(20)씨는 "한 달에 1,2번은 꼭 경기장을 찾는다"며 "전에도 자주했던 게임이라 친근감도 있고 재미도 있다"고 말했다.

물론 현재 온라인 게임대회는 스타크래프트1 뿐만이 아니다. 총싸움게임(FPS) 스페셜포스2, 곰TV 운영사인 그래택이 주관하는 스타크래프트2도 있다. 또 21일부터는 온게임넷에서 새로운 e스포츠로 각광 받는 미 온라인게임 '리그오브레전드(LOL)'의 첫 공식대회가 시작됐다. 게임 대회마다 한결같이 팬들로 넘치는데, 현장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유의 열기와 묘미 때문이라고 한다.

2007년부터 게임을 시작했다는 김선영(26)씨는"10대 때 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게임을 즐기는데, 친구들과 함께 직접 선수들을 보면서 응원하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설명했다. 한창주(33) 김유정(29)씨 부부도 "가까이에서 유닛(전투단위)들간 격렬하게 싸우는 장면을 보면 승부욕도 생기고, 큰 희열도 느끼게 된다"며 "선수들의 기발한 전략도 배울 수 있어 정말 좋다"고 말했다. 고 3 수험생이라는 박주혜(19)양도"경기도 보고 선수 팬미팅에도 참석하면 그 동안 쌓인 스트레스가 확 풀려 기분전환이 된다" 고 말했다.

고은경기자 scoopkoh@hk.co.kr

■ 억대연봉·스타대접 1%뒤 '사육훈련' 견디는 99%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와 억대 연봉.

흔히 프로게이머에 대한 일반의 이미지는 화려하다. 게임 전용 방송에도 출연하면서 스타덤에 올라, 수 많은 팬들을 거느린 선수들도 더러 있다. 때문에 언제부턴가 초등학생들이 뽑은 장래 희망 직업에도 상위권에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실상은 이런 겉모습과는 거리가 멀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국e스포츠협회에 따르면 21일 현재 공인된 프로게임 종목은 스타크래프트를 비롯해 총 23종이며 공식 등록된 프로게이머 수는 323명. 준프로(951명)까지 합치면 1,274명에 달한다. 게임을 밥 줄로 삼는 프로게이머의 세계는 그야말로 냉혹하다. 우선 수 백대 1의 경쟁률을 뚫어야 하고 언제나 성적으로 평가 받는다. 하루 17시간 가까운 살인적인 게임단 훈련 스케줄도 견뎌내야 한다. 물론 성적에 따른 연봉도 선수 별로 천양지차다. 소위 잘 나가는 억대 연봉 스타도 있지만, 도태되는 선수가 대부분이다. 승자만이 살아남는, 이른 바 정글의 법칙이 적용되는 세상이다. 선수 생명도 짧아 20대 후반만 되면 은퇴를 생각해야 할 정도로 장래가 불투명해진다.

현직 프로게임단 감독과 현역 선수, e스포츠협회 및 기업 실무자 등 현재 온라인 게임 관련 종사자들과 함께 선수 입문에서부터 게임단 생활, 훈련 등 프로게이머에 대한 모든 궁금증들을 알아봤다.

Q: 프로게이머는 어떻게 선발되나

A: 정식 프로게이머가 되려면 일단 전 구단(8개)이 준프로 선수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드래프트에서 선발돼야 한다. 매년 2회씩 시행되는 드래프트에선 한 구단이 최대 5명까지 뽑을 수 있다. 이 드래프트에 참가하려면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국e스포츠가 매월 1회씩 진행하는 준프로 선발전에서 1,2위로 뽑히거나 준프로들끼리 겨루는 루키리그(상ㆍ하반기 1회씩)에서 32위 안에 들어야 한다. 드래프트 참가 횟수는 제한이 없다.

Q: 구단에 뽑힌 프로게이머의 훈련과 생활은

A: 구단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훈련은 크게 기초와 전략 및 전술, 체력 훈련 등 강도 높은 코스로 이뤄져 있다. 잠자는 시간을 빼고 하루 종일 밤 늦께까지 훈련에 매달린다고 봐야 한다. 보통 오전 9, 10시에 기상해 조식을 마치고 오전에는 손 풀기와 게임 속 지형(맵) 파악이 이뤄지고, 오후에는 상대팀 전략 분석에 들어간다. 석식 이후 취침(새벽 2시)시간 전까지 개별 체력 훈련도 병행한다. 정규시즌(10개월) 기간에는 짧은 외출을 비롯해 개인 시간도 거의 허락되지 않는다. 비 정규시즌(2개월)의 휴가(약 1주일)와 명절 연휴가 유일한 자유시간일 정도로 생활이 철저히 매여 있다.

Q: 프로게임단 운영은 어떻게 하나

A: 계약을 맺은 1,2군과 그렇지 않은 연습생으로 나뉜다. 1군에게는 승리수당과 인센티브 등의 혜택이 주어지지만 2군은 승리수당만 가져간다. 연습생에겐 이런 혜택은 물론이고 어떤 경제적인 지원도 없다고 보면 된다. 사실상 출전 기회를 얻기 조차 힘든 게 현실이다. 그래서 연습생 시절을 견디지 못하고 나가는 친구들도 많다.

Q: 1군과 2군, 연습생 생활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른가

A: 숙소부터 다르다. 1군 선수들은 1인 1실이지만 2군과 연습생은 방을 같이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또 1군 선수들에겐 도우미가 청소와 빨래 등을 모두 해주지만 2군과 연습생들은 자기가 알아서 해야 한다. 1군 선수의 경우엔 근육통 등 의료 비용도 전액 구단에서 지원되는 경우가 많지만 2군과 연습생은 그렇지 않다. 그 만큼 차이가 많다.

Q: 기업들이 게임단을 운영하는 이유는

A: 브랜드 마케팅 차원에서다. 특히 온라인 게임의 경우 신세대 잠재고객이라는 타깃이 분명하다. 때문에 온라인 게임단 운영은 중장기적 차원에서 해당 기업의 제품이나 서비스 매출 효과를 상승시켜 줄 가능성이 높다.

Q: 최근에만 4개 구단이 해체됐는데.

A: 프로게임단 운영을 포기한 대부분의 기업들은 최근 경영실적이 좋지 않았다. 프로게임단 운영이 당장 매출로 연결되지 않아 그런 결정을 내린 것 같다. 외부 환경 변화에 취약한 게 프로게임단이다.

허재경기자 ricky@hk.co.kr

최흥수기자 choissoo@hk.co.kr

■ 혼내도… 인터넷 끊어도 '게임 오버'는 없었다

아들은 '신의 손'이었다. 스타크래프트 게임을 할 때 워낙 손이 빠르다고 친구들 사이에서 그렇게 불렸다. 아들과 한 게임 붙어보고 싶다는 아이들이 줄을 섰다. 공기업에 다녔던 이모씨는 아들이 고등학교 가기 전엔 정신 차리겠지 하고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어느 새 이씨는 퇴근 후 매일 같이 가족들과 함께 온 동네 PC방을 뒤지는 게 일이 됐다. 스타크래프트는 속도가 생명인데 PC방마다 차이가 난다며 날마다 PC방을 바꿔 다니는 아들을 잡아다 집으로 끌고 가야 했다. 급기야 아들은 프로게이머가 되겠다고 폭탄선언을 했다. 인터넷 끊고 키보드를 망치로 부순 것도 수 차례. 두들겨 패도 소용 없었다.

이씨네와 비슷한 갈등을 겪는 가정이 적지 않다. 게임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해야 할 일은 뒷전인 데다, 덜컥 프로게이머가 되겠다고 나서면 좋은 소리 나올 부모 드물다. 대부분 그만하라거나 안 된다는 식의 부정적이고 강압적인 표현부터 앞서게 된다.

하지만 부모가 그만하란다고 순순히 컴퓨터를 끄거나, 안 된다 했다고 바로 꿈을 포기하는 아이 역시 드물다. 결국 부모는 윽박지르거나 폭력을 쓰고, 아이는 도리어 반발심이 생겨 더욱 게임에 집착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이씨의 아들도 아버지가 컴퓨터를 부술 때마다 게임 대회에 나가 탄 상금으로 다시 보란 듯 컴퓨터를 사 들고 왔다. 공대에 가겠다는 아들을 이씨는 혹시나 컴퓨터에 계속 빠질까 싶어 적성에 관계 없이 강제로 인문계로 진학시켰다. 중고등학교 내내 그렇게 갈등하던 부자는 점점 지쳐갔다.

전문가들은 게임에 빠진 자녀를 무조건 혼부터 내거나 윽박지르는 건 부모가 자신의 불안감을 해소하려는 행동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박진영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그런 부모를 보며 아이 마음 속에 쌓인 억압이나 분노가 오히려 게임에 더 몰입하거나 반항하는 등 잘못된 방식으로 표현될 수 있다"고 말했다.

무작정 프로게이머가 되겠다는 자녀를 설득하려면 아이가 스스로 현실을 납득할 수 있도록 아이 입장에서 도와줘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많은 아이들이 단순하고 막연하게 프로게이머를 꿈꾼다. 남들보다 게임을 잘 하니까, 좋아하는 게임을 하며 돈도 벌 수 있으니까, 공부 못해도 게임만 잘 하면 될 테니까 하는 식으로 말이다.

중앙대병원 게임 과몰입 상담치료센터 한덕현 교수는 "프로게이머가 되려면 체계적인 훈련과 고된 연습을 견뎌내고, 고난도 작전을 짜내고, 충동성과 공격성을 조절할 줄 알고, 승패를 받아들일 줄 아는 등 수많은 자격 요건을 갖춰야 하고, 그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아이가 스스로 깨달을 수 있게 지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 교수팀은 실제로 국내에서 활동 중인 프로게이며 17명과 게임 과몰입 상태로 진단받은 아이들이 게임을 하는 동안 뇌 영상을 찍어 비교해봤다. 그 결과 과몰입 상태인 아이들의 뇌에선 쾌락중추가 활발히 활동한 반면, 프로게이머들의 뇌에선 쾌락을 비롯한 감정을 다스리는 조절중추가 활성을 보였다. 과몰입 아이들은 충동적으로 즐기기 위해 게임을 하지만, 프로게이머는 공부할 때처럼 고차원적인 뇌기능을 쓰며 경기를 한다는 얘기다.

프로게이머의 꿈을 꾸며 일상생활에 지장이 생길 정도로 게임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아이들은 또 우울증이나 불안감, 학교 부적응 같은 문제를 이미 갖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박 교수는 "아이가 왜 게임에 빠질 수밖에 없는지 구체적인 이유를 파악하는 게 우선"이라며 "게임중독에 대해 의학적으로도 아직 명확한 치료법이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들 개별 상황에 맞는 대응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 합숙생활서 인권 등 무신경… 출전연령제한 필요

"기업이 주도해 프로게임단을 만들고 관련 협회를 운영하면서 많은 프로게이머 문제들이 발생했다."

게임 칼럼니스트인 김정근 씨는 인권 유린 소지가 다분한 현재의 프로게이머 양산 시스템을 구조적 문제로 진단했다. 게임웹진 기자 생활을 한 그는 이를 고발하는 란 책을 내기도 했다.

김 씨는 우선 프로게이머 선발에 나이 제한이 없는 점을 문제로 들었다. 김 씨는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지원하도록 하기 위해 한국e스포츠협회에서 나이 제한을 두지 않았다"며 "그래야 협회와 프로게임단의 기반이 넓어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렇다 보니 그는 "중학교 2학년생들이 프로게이머가 되기 위해 학교도 그만두고 월 30만원씩 내고 닭장이라고 부르는 클랜 합숙소에서 게임 훈련을 했다"며 "클랜 책임자가 드래프트제도를 통해 프로게임단에 연습생으로 밀어 넣어주기 때문에 합숙소 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더 큰 문제는 프로게임단에 묶이는 순간 선수의 권리가 철저하게 제한된다는 점. 그는 "프로게임단에 들어가는 순간 교육 및 여가활동 기회 등 사생활이 사라진다"며 "프로게임단은 이적 금지는 물론이고 다른 팀 선수들과 만나지 못하도록 선수들을 통제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된 이유는 한때 일부 프로게이머들이 권리를 찾기 위해 선수협의회를 만들려고 시도했기 때문. 결국 구단이 해당 선수들을 차단하면서 협의회 결성은 무산됐다.

더불어 드래프트제를 거쳐 프로게임단에 입단해야 선수로 뛸 수 있는 스타크래프트1 대회의 구조 또한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다. 그는 "이 같은 구조는 프로게임단과 협회가 선수의 생사여탈권을 쥐게 된다"며 "그렇다 보니 한 명의 성공한 선수를 만들기 위해 수 많은 선수들이 저임금에 시달리며 희생되는 게 스타크래프트1 프로게임리그의 문제"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를 해결하려면 협회와 기업 위주의 프로게임대회가 아닌 생활 스포츠 형태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협회와 프로게임단이 드래프트제도를 통해 소수의 선수만 키우는 관전형 스포츠가 아니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생활스포츠 형태로 바뀌면 자연스럽게 e스포츠와 게임산업이 발전한다"며 "그래야 여가 문화가 부족한 한국에서 e스포츠가 긍정적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기본권 보장을 위해 대회 참여 연령의 제한 등 제도적 틀을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고 짚었다.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 하루 평균 13시간 훈련… 손목·허리 만성통증에 우울증까지

프로게이머들의 하루 평균 연습 시간은 13시간. 잠자는 시간, 식사 시간을 제외하곤 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 연습에 몰두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생활이 매일 반복되면서 프로게이머들은 만성적인 근골격계 질환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 같은 자세로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장시간 의자에 앉아 게임을 하는 프로게이머들에게 손목ㆍ어깨 저림 현상은 직업병이나 마찬가지다. 신체 활동량이 적어 근육이 약화하기 쉽고 장기간 방치 시 손목터널증후군, 요통, 디스크, 우울증 등의 증상에 시달린다.

초기엔 약간 불편한 느낌을 주지만 심해지면 은퇴의 기로에 서게 된다. 실제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였던 '대인배 저그' 김준영 선수와 '괴물' 최연성 선수는 손목터널증후군이 심해져 은퇴했다.'테란의 황제' 임요환(슬레이어스) 선수도 한 때 디스크로 고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타크래프트Ⅱ 프로게이머인 장민철(22ㆍSK게이밍) 선수는 "프로게임을 시작하고 2~3년 후부터는 오랜 시간 연습하면 어깨가 아파 불편하고 집중도 잘 안된다"고 말했다. 그는 "예전 동료 중 한 명은 허리디스크 증세 때문에 게임 두 판만 하면 아파서 게임을 더 하지 못했다"며 "잠깐 누워있다 오곤 했지만 성적이 떨어져 결국 은퇴했다"고 말했다.

정훈교 한신대 스포츠재활과학대학원장은 "컴퓨터를 장시간 사용하는 프로게이머들은 책상과 의자의 높낮이 조절로 잘못된 자세를 바로잡고, 짧은 시간이라도 규칙적으로 스트레칭, 체조 등을 통해 뭉친 근육을 풀어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컴퓨터를 장시간 사용하는 직장인이나 청소년에게도 해당되는 조언이다.

허경주기자 fairyhkj@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