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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View/ 방통위 마녀사냥하듯 규제 '펀치'… 가슴 멍드는 웹툰 작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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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View/ 방통위 마녀사냥하듯 규제 '펀치'… 가슴 멍드는 웹툰 작가들

입력
2012.03.23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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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들의 학교에서 '전설의 주먹'으로 불리던 1진 고교생 덕규, 재석, 상훈 등은 싸움을 벌이다 실수로 노숙자를 죽이지만 진실을 묻기로 한다. 공사판 노동자로 일하던 덕규는 20여년이 지난 어느 날 과거 각 학교 1진이었던 사람들이 격투기를 벌이는 리얼리티 쇼 출연 제의를 받는다. 문제아 딸의 폭행 합의금 2,000만원을 벌기 위해 TV에 나온 덕규에 이어 다른 친구들도 폭력으로 시작된 비극을 씻기 위해 연달아 이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쇼를 보는 사람들은 싸움에 열광한다. 동시에 저질 쇼에 참가했다며 이들을 조롱하고 멸시한다. 급기야 네티즌들은 이들의 신상 정보를 털어 마녀사냥에 나선다. 덕규와 친구들은 폭력 때문에 빚어진 자신들의 비극적인 삶이 자식들에게 대물림 될까 두려움에 떤다.

최근 강제규 감독이 영화화를 결정한 웹툰(인터넷 만화) '전설의 주먹' 줄거리다. 이 웹툰의 글을 맡은 이종규 작가는 23일 "폭력이 개인에게 미치는 폐해와 이를 다루는 미디어의 과도한 상업성, 단편적 사실만으로 누군가를 낙인 찍어 희생양을 만드는 대중의 문제를 만화를 통해 다루고 싶었다"고 말했다. 다소 잔인한 폭력, 룸살롱 음주 장면 등이 등장하긴 하지만 이는 이야기를 끌어가기 위한 장치일 뿐 단순한 폭력 만화가 아니다.

그러나 학교폭력이 큰 사회적 문제가 된 지난 2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이 웹툰을 포함해 24개 작품을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지정하겠다고 밝혔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식으로 학교폭력의 후폭풍을 맞게 된 만화계가 1인 시위 등 크게 반발하는 것은 당연지사. 여기에는 1997년 청소년보호법 제정 때 폭력 만화 때문에 청소년 문제가 일어나는 것처럼 여론이 이는 바람에 만화 잡지들이 소멸하다시피 한 트라우마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는 15년 만에 웹툰이 된서리를 맞게 된 요즘 만화가들은 정부조치를 어떻게 보고 있는 것일까.

방통심의위는 해당 작가들에게 보낸 '사전통지 내역 및 의견 제출 안내문'을 통해 "잔혹한 살상 또는 폭행 등의 장면을 자극적으로 묘사하여 폭력을 조장하거나 미화할 수 있어 청소년의 건전한 인격 형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만화가들은 "작품의 전체 맥락은 고려하지 않은 채 폭력만 문제 삼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좌우'라는 작품이 유해매체물 지정 예고 통보를 받은 김수용 작가는 "청소년들이 볼 것을 감안해 작품을 만들었고, 폭력을 미화하는 내용은 없다"며 "문제가 된 24편 중 15편은 이미 자율규제를 하고 있는데도 방통심의위가 나서 작가들의 손발을 묶어 놓으려 한다"고 비판했다.

특히 이번에 방통심의위로부터 사전 통지를 받은 만화 중 하나인 '더 파이브'. 연쇄살인마에게 부인과 딸을 잃은 남자의 복수를 다룬 작품이다. 이 만화는 지난해 대한민국 콘텐츠 어워드 만화 부문에서 문화부장관상을 받았으니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이를 만든 정연식 작가는 "앞뒤가 맞지 않는 정부조치를 이해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011 미스터리 연작' 중 하나인 '옥수역 귀신'은 만화로는 드물게 움직이는 귀신이 등장해 해외에서까지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또 '살인자ㅇ난감'은 죄를 지은 사람을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소년이 연쇄살인자를 찾아 처단하고, 형사 난감이 이를 뒤쫓는 내용으로 지난해 '오늘의 우리 만화'상을 수상할 정도로 작품성을 인정받은 작품이다.

이런 논란은 과거에도 있었다. 1997년 청소년보호법 제정 후 벌어진 이현세 작가의 만화 '천국의 신화' 사태가 대표적이다. 종교계와 보수 언론 등이 이 작품의 선정성, 폭력성을 지적하자 검찰은 음화 제작 및 배포 혐의로 이 작가를 기소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2003년 무죄를 확정함으로써 만화 작품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역설적 계기가 됐다.

황승흠 국민대 법학연구소장은 "청소년보호법상 심의 규정에도 매체 특성과 함께 작품의 전체적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고 돼 있다"며 "방통심의위가 지나치게 낡은 과거의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고 비판했다.

'순정만화' 등으로 널리 알려진 대표적 웹툰 작가 강풀씨는 "웹툰에 유해매체라는 딱지가 붙는 순간 작가는 자기 검열을 시작하게 된다"며 우려했다.

이동현기자 na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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