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안보정상회의(26~27일)를 앞두고 사전행사의 일환으로 23일 서울 그랜드인터컨티넨탈에 개막된 원자력인터스트리서밋. 말 그대로 원자력산업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200여명의 세계 민간지도자들이 모여 핵안보 현안을 논의하는 자리다.
이날 낮엔 서밋 참가자들을 위한 오찬행사가 준비되어 있었다. 하지만 호스트인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은 오찬장에 없었다. 사람들을 초청해놓고 정작 주인이 없는 황당한 광경이 벌어진 것이다.
그 시간, 홍 장관은 부산행 KTX에 타고 있었다. 고리 원자력발전소 1호기 정전 및 은폐사고와 관련해 지역주민들에게 사고경위와 재발방지대책을 설명하러 가는 길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홍 장관은 외국손님들에게 큰 결례까지 범하면서 급하게 원전지역 주민들을 만나러 가야 했던 것일까.
발단은 하루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홍 장관은 지난 22일 이명박 대통령은 원전사고 경위를 보고하던 중 호된 꾸지람을 받았다. 이 대통령은 에너지당국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떨어뜨린 이번 사고와 관련해 주무장관인 홍 장관을 강하게 질책하면서 "부산ㆍ경남지역을 찾아가 현지주민에게 경위와 대책을 직접 설명하라"고 지시했다. 결국 홍 장관은 자신이 주최하는 오찬행사까지 취소하며 부랴부랴 부산으로 내려가게 된 것이다.
사실 사고가 발생한 것, 그것을 은폐한 것도 어이없는 일이지만 이후 지역주민들을 더욱 화나게 한 것은 당국의 태도였다. 가장 불안한 건 원전주변 지역주민들인데, 지식경제부도 한국수력원자력도 누구 하나 속 시원히 설명해준 사람은 없었다. 지난 15일엔 지역주민대표들이 사고경위와 안전에 대한 설명을 듣기 위해 고리원전을 직접 찾아갔지만 발전소장은 만날 수도 없었다. 지역민심이 들끓는 건 당연했다.
홍 장관은 처음부터 지역에 내려가 사과하고 주민들의 불안감을 덜어줘야 했다. 당연히 해야 할 걸 안 하니까 대통령의 질책이 뒤따랐고, 대통령 지시를 급하게 따르려다 보니 전 세계 원전지도자들을 점심 자리에 불러 놓고 정작 본인이 불참하는 사태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지역주민들에게도 외국손님들에게도 모두 결례를 한 셈이다.
모든 게 우왕좌왕, 헛발질의 연속이다. 이제와서 "사고조사결과를 기다리느라 방문이 늦어졌다"고 설명해도 지역주민들의 맘이 풀릴 리 없고, "한국에선 대통령 지시가 무엇보다 우선한다"고 얘기해도 외국손님들은 납득하지 못할 것이다.
이 모든 사단은 단 한 가지, '뭐든 주민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당연한 자세를 공직자가 갖지 못한 데서 출발했다.
유인호 산업부 기자 yi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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