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까지 스피드 스케이팅 유망주로 이름을 날린 김지선(25)과 김은지(23). 경북 출신으로 뛰어난 실력을 자랑하며 경기도에 스카우트 된 이슬비(24). 기혼자의 신분에도 90년 대 말부터 여자컬링국가대표팀 자리를 지킨 신미성(34)과 이현정(34). 5명의 태극 낭자들이 기적을 만들어냈다.
한국 여자컬링대표팀은 23일(이하 한국시간) 캐나다 앨버타 레스브리지에서 열리고 있는 2012 세계여자컬링선수권대회에서 사상 첫 4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첫 출전한 2002년 9전 전패, 2009년 3승8패(10위), 2011년 2승9패(11위) 등 그 동안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대표팀은 세계 2위 스웨덴을 꺾는 파란을 일으키며 눈부신 업적을 세웠다.
전날까지 7승2패로 공동선두였던 한국은 이날 1승만 추가하면 예선 상위 네 팀이 겨루는 플레이오프 진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스위스와의 예선 10차전 10엔드에서 결승점을 내주며 아쉽게 5-6으로 졌다.
4시간 뒤 열린 러시아와의 최종 11차전. 한국은 7-3, 완승을 거두고 8승3패로 스웨덴(1위), 스위스(2위)와 동률을 이뤘다. 그러나 매 경기 선·후공을 가리는 드로샷 챌린지(스톤을 한 차례 던져 목표 중앙에 가깝게 세우는 팀이 후공)의 정확성에서 두 나라에 뒤져 아쉽게 3위를 차지했다.
훈련 장소도 마땅하지 않은 척박한 환경에서 일궈낸 성과이기에 감동은 더했다. 대표팀의 공식 훈련장은 태릉선수촌에 위치한 컬링 전용구장. 하지만 전문 관리인이 없어 빙질 상태가 좋지 않다. 습도, 온도 등도 북유럽 경기장에 비하면 엉망이다. 국제 무대를 앞두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것은 태극 낭자들의 또 다른 일거리였다.
하지만 대표팀은 이를 악물었다. 나란히 경기도체육회 소속으로 환상의 호흡을 자랑한 이들은 매일 5시간 이상 훈련하는 악바리 근성으로 기적을 준비했다. 컬링 연맹 관계자들도 전혀 예상치 못한 한국의 4강 플레이오프 진출이었다. 한국의 수준은 캐나다, 스웨덴, 스위스 등 컬링 강호들뿐만 아니라 아시아에서는 중국에도 뒤지는 게 사실이었다.
주심이 러시아와의 경기 종료를 선언하자 대표팀은 서로 얼싸안고 눈물을 쏟았다. 컬링 변방의 한국이 이뤄낸 기적에 경기장을 가득 메운 교민들은 태극기를 휘날렸다. 지난해 대한컬링연맹에 선수 등록이 된 여자 선수는 278명이 전부다. 남자 선수를 포함해도 681명밖에 되지 않는다. 열악한 인프라에서 나온 한국의 돌풍에 다른 나라 선수들도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대표팀을 지도한 신동호 의정부 고등학교 코치는 23일 "베테랑의 노련미와 젊은 선수들의 패기가 적절히 조화된 결과다. 태극 낭자들의 열정과 자신감은 세계 최고"라며 "컬링 선수들의 심리 상태는 사격, 양궁 선수들과 흡사하다. 조정력과 순발력, 심리적 안정감이 필요한 데 우리 선수들이 이 부분에서 뛰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컬링의 한 게임은 10엔드로 구성되고 경기 시간은 2시간40분 정도 소요된다. 각 팀은 4명(후보 1명 외)의 선수로 이뤄지며 일반적으로 리드, 세컨드, 서드, 스킵의 순서로 투구한다. 한 팀당 8개의 스톤을 상대팀과 한 개씩 번갈아 투구(선수 1인당 1개씩 2회 투구)하는 컬링은 4.8m 하우스 안에 얼마나 많은 스톤이 중심에 더 가까이 있는지를 점수로 매긴다.
신 코치는 "이번 대회의 호성적으로 2018 평창 동계 올림픽에서도 메달을 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됐다. 고1때부터 컬링을 시작한 주장(스킵) 김지선은 샷 능력이 뛰어나 대표팀 에이스로서 꾸준한 활약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고 높은 평가를 내렸다.
한국 컬링의 역사를 새롭게 쓴 대표팀은 25일 공동 4위 캐나다와 미국의 순위 결정전 승자와 플레이오프 첫 번째 경기를 벌인다. 여기서 이기면 스웨덴과 스위스의 맞대결에서 진 팀과 결승 진출을 놓고 다툰다.
함태수기자 hts7@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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