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전 10시20분 113명의 승조원을 태운 해군 제2함대 영주함에 비상벨이 울려퍼진다. "전투배치!" 명령이 떨어졌다. 진행 방향 오른쪽으로 부유기뢰가 발견된 것. 갑판사관의 통제로 20명의 승조원들이 함수갑판에 배치됐다. 배가 속도를 늦추자 7명의 밸브요원들이 6.3㎝ 구경의 호스로 기뢰를 향해 고압 물대포를 발사했고 기뢰를 멀리 밀어냈다. 밀려난 기뢰는 초계함을 호위하며 따라오는 소해함이 폭발시킨다.
경기 평택항을 출항한 지 1시간 만에 처음 맞부딪힌 가상 적군의 공격이었다. 2함대 서북방 72㎞ 목덕도 연안에 출현한 가상의 적 함정에 대한 함포사격과 적 잠수함에 대한 폭뢰투하가 이날의 훈련이었다.
영주함은 2년 전 폭침된 천안함과 똑 같은 구조와 동일한 무장을 한 1,200톤급 초계함. 함정 곳곳에는 '나의 전우를 건드리는 자 죽음을 각오하라', '전우는 가슴에 묻고 적은 바다에 묻자' 같은 구호들이 붙어 있었다. 파고는 잔잔했고(0.5m) 승조원들의 표정에는 긴장감이 흘렀다.
기뢰가 떠다니는 협수로를 빠져 나온 영주함은 오후 2시께 목덕도 연안에 도착했다. 정선명령을 거부하는 가상적함과 팽팽하게 대치하며 북상하라는 경고방송을 한 지 30분. 적함이 북상을 거부하자 영주함보다 미리 이곳에 도착한 570톤급 유도탄고속함 지덕칠함과 조천형함의 함포가 불을 뿜었다. 이어 영주함이 주포인 76㎜포 30발, 부포 40㎜포 30발을 적함에 퍼부었고 포탄은 5.3㎞ 밖 부표(가상 적함)에 잇따라 명중했다. 이어 상갑판에 설치된 K-6포(일명 3ㆍ26포)의 추가사격 30발이 이어졌고 적함은 연기와 화염에 휩싸여 북쪽으로 도주했다. 이 K-6포는 천안함에서 전사한 고 민평기 상사의 모친 윤청자씨가 기탁한 아들의 사망보험금과 성금으로 마련된 것이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적 잠수함에 대한 폭뢰투하 훈련이었다. 오후 3시께 수중에서 미확인 물체가 감지되자 전 승조원에게 대잠전투명령이 전달됐다. 음파탐지실은 수중표적의 위치를 파악해 통제실에 전달했다. 홍정안(43) 함장이 "폭뢰 투하!" 명령을 내리자, 함정 후미에서 폭뢰 1개가 수심 15m 지점의 가상 적 잠수함을 향해 떨어졌다. 영주함이 시속 40㎞의 최고속력으로 위험지역을 벗어나자 10초 뒤 강력한 폭발음과 함께 폭뢰공격 성공을 의미하는 20~30m 높이의 물기둥이 솟아올랐다. 환호성이 울려 퍼지며 이날 훈련은 종료됐다.
영주함에서 적 잠수함 탐지업무를 책임지고 있는 대잠관(對潛官) 조선혜(26) 대위는 "천안함 폭침 이후 해군 초계함과 호위함에는 적함이 발사한 어뢰를 다른 곳으로 유도하는 어뢰음향대항체계(TACM)를 장착했고 음탐 부사관의 청음 실습교육시간을 4배 이상 확대하는 등 대잠수함 대비태세를 강화했다"며 "음탐 분야의 전문지휘관이 돼 적의 어떤 잠수함도 우리 영해를 침범하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날 해군 2함대에서 만난 천안함 생존장병들은 "북한의 어떤 도발도 끝까지 응징하겠다"고 강조했다. 침몰 당시 천안함 작전관으로 근무했고 사고 후 육상근무를 하다가 지난해 7월 2함대의 한 전투함 부함장으로 부임한 박연수(28) 대위는 "임신한 아내와 가족들의 만류를 뿌리치기가 힘들었지만 단 한번의 사과조차 없는 북한을 용서할 수 없어 함정근무를 자원하게 됐다"고 말했다. 천안함의 병기하사였다 현재 2함대 무기지원대대에 근무하고 있는 김효형(23) 하사는 "배에 있을 때도 깊은 얘기를 나누고 휴가 때도 밖에서 술 한잔 기울이며 고민을 털어놓았던 임관 동기 균석(고 차균석 중사)이가 너무 그립다"며"혼자 살아남은 게 너무 죄송스러워 균석이 부모님께도 자주 연락을 드리고 있다"고 말했다.
평택=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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