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한 악몽 같은 한 주일이었다. 제4회 비씨카드배 월드바둑챔피언십 32강전에 느닷없이 몰아친 거센 황사 태풍에 한국 바둑계가 완전히 쑥대밭이 됐다.
이번 32강전에는 한국과 중국이 똑같이 15명 씩 진출해 팽팽한 접전이 예상됐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가 빚어졌다. 17일 랭킹 1위 이세돌이 중국의 10대 신예 탕이페이에게 뜻밖의 패배를 당했고 이창호 역시 1998년생 미위팅에게 고배를 마신 게 비극의 시작이었다. 같은 날 박진솔도 저우루이양에게 졌고 18일엔 김지석이 조선족 기사 파오원야오에게, 허영호는 천야오예에게, 온소진이 니우위티엔에게 줄줄이 무릎을 꿇었다. 또 19일에 나현이 장웨이지에에게, 이원도가 탄샤오에게, 20일에는 김승준이 씨에허에게, 김기용이 후야오위에게 패해 32강전에서 벌어진 한중전 11판 가운데 무려 10판을 중국선수가 승리했다. 한국은 유일하게 랭킹 24위 이원영이 멍타이링을 이겨 간신히 전패를 면했다. 결국 한국은 형제대결에서 승리한 박영훈(상대 홍성지)과 백홍석(상대 원성진)을 포함, 단 세 명이 16강전에 올랐고 중국은 중중전과 중일전에서 승리한 구리, 콩지에, 류싱을 포함해 무려 13명이 32강전을 통과했다. 한국은 랭킹 10위권 내 기사가 박영훈(8위) 한 명 뿐인데 반해 중국은 5위 스위에 한 명만 빼고 나머지 9명이 모두 16강전에 올라갔다. 세계대회 역사상 최악의 참패다.
특히 16강전 진출자 가운데 1990년 이후에 출생한 이른바 '90후 세대'의 활약이 돋보인다. 한국은 90년 이후 출생자가 이원영(1992년생) 한 명 뿐인데 반해 중국은 장웨이지에 저우루이양(이상 91년생), 탄샤오(93년생), 탕이페이(94년생), 미위팅(98년생) 등 다섯 명이나 된다.
지난해 한국은 비씨카드배와 춘란배(이세돌) 삼성화재배(원성진) 후지쯔배(박정환) 등 5개 주요 세계대회 가운데 4개를 석권했고 농심배와 정관장배 등 단체전에서도 우승했지만 올해는 LG배 결승전서 이창호가 장웨이지에에게 패했고 농심배서도 중국에 우승을 빼앗겼다. 얼마 전 열린 바이링배 본선 1회전에서도 중국 선수 22명이 32강에 오른 데 반해 한국은 8명에 그쳤다.
최근 한국바둑 부진의 원인에 대해서는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중국에 비해 신예 강자들의 선수층이 엷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로 지적되고 있다. 따라서 입단 문호를 좀 더 넓히고 15세 이하에 가산점을 주는 등 나이 어린 바둑영재를 집중적으로 발굴, 육성할 수 있는 시스팀을 갖춰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또 현재 국내 기전이 대부분 기본생각시간이 10분 정도에 불과한 속기기전이어서 국내 기사들이 세계기전(생각시간 3시간)에 잘 적응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박영철 객원 기자 indra36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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