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책과세상/ '비성년열전' "아무도 안" 인 존재들을 찾아서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책과세상/ '비성년열전' "아무도 안" 인 존재들을 찾아서

입력
2012.03.23 12:15
0 0

비성년열전/신해욱 지음/현대문학 발행ㆍ312쪽ㆍ1만3,000원

손꼽히는 젊은 시인 신해욱(38)씨의 첫 산문집은 제목대로 비성년(非成年)들을 소개하는 책이다. 비성년이라는 낯선 말은 신씨가 직접 만든 조어. 그 뜻을 설명하려 신씨는 기존 단어 미성년과 대조한다. 미성년이 '아직' 성년이 되지 못한 이들이라면, 비성년은 '이미' 성년이 되지 않은 이들, 즉 인간의 질서를 거절하거나 혹은 거절 당한 열외인간이다. 이 책은 소설 만화 영화 등 픽션이나 실존 인물에서 찾아낸 12명의 비성년에 부치는(혹은 바치는) 섬세하고도 지적인 에세이다.

일본 만화가 후루야 미노루의 <두더지> 속 주인공 스미다. 인간말종인 아비를 충동 살해한 뒤 세상을 위해 나쁜 놈 하나 제거하고 자살하겠다고 결심한 소년이다. 식칼 한 자루 들고 밤거리를 헤매는 그의 앞에는 외눈박이 괴물이 불쑥불쑥 나타나 정상적 세계로 돌아오라고 유혹한다. 그를 아끼는 이들이 그에게 자수하고 새 삶을 시작하라고 입 모아 권하듯. 그러나 스미다는 죽음으로써 괴물의 끈질긴 유혹을 영원히 거부한다.

이 난감한 결론을 두고 신씨는 의표를 찌르는 변론에 나선다. 스미다가 꿈꿨던 '보통의 삶'은 '가장 보통'이 되는 것이지 '그냥 보통'으로 전락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 "유혹에 이끌려 '그냥 보통'이 되는 건 비겁함과 뻔뻔함을 삶의 불가피함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다르지 않다."(36쪽) "스미다는 '정상(正常)이라는 괴물'이 되지 않은 채 스스로 최소한의 인간일 수 있다."(39쪽)

비성년하면 <호밀밭의 파수꾼> 의 주인공 홀든 콜필드도 빠질 수 없다. 입만 살아있는 이 '찌질한' 문제아의 좌충우돌 행보를 신씨는 신선하게 재해석한다. "그는 싫은 세계를 계속 싫어하면서 외로움과 우울함만을 차단하려고 한다. 그러기 위해 아이러니하게도 싫은 세계의 사람들에게 손을 잡아달라고 애원한다. 의도는 매번 실패한다."(55쪽) 이 반복되는 슬랩스틱은 그에게 "지금 내게 좋은 것을 지키는 일"이다. '좋은 것'이란 바로 '이미 인간이 아닌' 죽은 동생 앨리와, 그에게 파수꾼을 꿈꾸게 하는 '아직 인간이 아닌' 아이들.

영화 '신성일의 행방불명'의 탐식 소년 신성일, 스웨덴 소설 <렛 미 인> 속 소아성애자 호칸 벵손, '결혼장애증후군'을 앓았던 세기의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도 책 목록에 이름을 올린 비성년들. 이들 열두 명의 '공식 주인공' 외에도 다수의 비성년들이 등장해 논의를 풍성하게 하는데, 살해 충동을 살인마들에게 해소하는 미국 드라마의 주인공 덱스터가 한 예다.

책 마지막 장에 등장하는 비성년은 실존 인물 알프레드 메흐란. 프랑스 드골공항에 18년 간 둥지를 틀었던, 스필버그 영화 '터미널'의 실제 모델 말이다. 국가와 법의 세계에서 존재를 부정 당했던 그를 신씨는 '아무도 안'(nobody)이라 칭한다. "서류는 '아무도 안'인 국적을 모르고, 서류는 그의 (무)소속을 읽어낼 수 없었다."(297쪽) '아무도 안'인 존재, 비성년을 조명하고 그들의 존재 방식을 섬세하게 읽어낼 수 있는 것이야말로 문학 고유의 존재 이유일 것이고, 신씨가 이 책을 통해 환기하는 바도 그 점일 듯싶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