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성년열전/신해욱 지음/현대문학 발행ㆍ312쪽ㆍ1만3,000원
손꼽히는 젊은 시인 신해욱(38)씨의 첫 산문집은 제목대로 비성년(非成年)들을 소개하는 책이다. 비성년이라는 낯선 말은 신씨가 직접 만든 조어. 그 뜻을 설명하려 신씨는 기존 단어 미성년과 대조한다. 미성년이 '아직' 성년이 되지 못한 이들이라면, 비성년은 '이미' 성년이 되지 않은 이들, 즉 인간의 질서를 거절하거나 혹은 거절 당한 열외인간이다. 이 책은 소설 만화 영화 등 픽션이나 실존 인물에서 찾아낸 12명의 비성년에 부치는(혹은 바치는) 섬세하고도 지적인 에세이다.
일본 만화가 후루야 미노루의 <두더지> 속 주인공 스미다. 인간말종인 아비를 충동 살해한 뒤 세상을 위해 나쁜 놈 하나 제거하고 자살하겠다고 결심한 소년이다. 식칼 한 자루 들고 밤거리를 헤매는 그의 앞에는 외눈박이 괴물이 불쑥불쑥 나타나 정상적 세계로 돌아오라고 유혹한다. 그를 아끼는 이들이 그에게 자수하고 새 삶을 시작하라고 입 모아 권하듯. 그러나 스미다는 죽음으로써 괴물의 끈질긴 유혹을 영원히 거부한다. 두더지>
이 난감한 결론을 두고 신씨는 의표를 찌르는 변론에 나선다. 스미다가 꿈꿨던 '보통의 삶'은 '가장 보통'이 되는 것이지 '그냥 보통'으로 전락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 "유혹에 이끌려 '그냥 보통'이 되는 건 비겁함과 뻔뻔함을 삶의 불가피함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다르지 않다."(36쪽) "스미다는 '정상(正常)이라는 괴물'이 되지 않은 채 스스로 최소한의 인간일 수 있다."(39쪽)
비성년하면 <호밀밭의 파수꾼> 의 주인공 홀든 콜필드도 빠질 수 없다. 입만 살아있는 이 '찌질한' 문제아의 좌충우돌 행보를 신씨는 신선하게 재해석한다. "그는 싫은 세계를 계속 싫어하면서 외로움과 우울함만을 차단하려고 한다. 그러기 위해 아이러니하게도 싫은 세계의 사람들에게 손을 잡아달라고 애원한다. 의도는 매번 실패한다."(55쪽) 이 반복되는 슬랩스틱은 그에게 "지금 내게 좋은 것을 지키는 일"이다. '좋은 것'이란 바로 '이미 인간이 아닌' 죽은 동생 앨리와, 그에게 파수꾼을 꿈꾸게 하는 '아직 인간이 아닌' 아이들. 호밀밭의>
영화 '신성일의 행방불명'의 탐식 소년 신성일, 스웨덴 소설 <렛 미 인> 속 소아성애자 호칸 벵손, '결혼장애증후군'을 앓았던 세기의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도 책 목록에 이름을 올린 비성년들. 이들 열두 명의 '공식 주인공' 외에도 다수의 비성년들이 등장해 논의를 풍성하게 하는데, 살해 충동을 살인마들에게 해소하는 미국 드라마의 주인공 덱스터가 한 예다. 렛>
책 마지막 장에 등장하는 비성년은 실존 인물 알프레드 메흐란. 프랑스 드골공항에 18년 간 둥지를 틀었던, 스필버그 영화 '터미널'의 실제 모델 말이다. 국가와 법의 세계에서 존재를 부정 당했던 그를 신씨는 '아무도 안'(nobody)이라 칭한다. "서류는 '아무도 안'인 국적을 모르고, 서류는 그의 (무)소속을 읽어낼 수 없었다."(297쪽) '아무도 안'인 존재, 비성년을 조명하고 그들의 존재 방식을 섬세하게 읽어낼 수 있는 것이야말로 문학 고유의 존재 이유일 것이고, 신씨가 이 책을 통해 환기하는 바도 그 점일 듯싶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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