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메아리] 초심을 새로 찾을 때

입력
2012.03.23 12:03
0 0

사회 공동체나 집단의 인식이 세 단계 과정으로 순환한다는 이론이 있다. '3-M cycle(순환)'이 그것인데, 기독교 교육학자 하워드 헨드릭스(Howard Hendricksㆍ1924~ ) 교수(달라스 신학대)가 교회와 신앙의 변화를 정립해 놓은 이론이다. Movement(성장과 발아ㆍ發芽)-Machine(기계적 반복)-Monument(유물이나 기념)의 과정이 반복되어 나타난다는 의미다. 종교 차원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현상을 간추려 설명하는 분석교육학의 유익한 도구로 널리 알려져 있다.

신학자인 그는 외형적인 교회와 기독교인의 내적 믿음을 자신의 관찰과 체험으로 설명했다. Movement는 교회가 새로 만들어지고 신도들의 믿음이 크게 일어나는 시기, Machine은 정돈된 교회는 규칙적 활동에 몰두하고 신도들도 습관적이고 의례적으로 예배에 참여하는 시기, Monument는 교회가 유물이나 기념비 같은 형태로 존재하고 신도들은 믿음을 응고된 기억으로 간직하는 시기라고 했다. 20세기 이후 교회와 믿음은 대략 10년씩, 30년을 주기로 이와 같은 세 단계 과정을 거치고 있다고 한다.

헨드릭스 교수가 예상한 바는 아니었겠지만, 최근 우리의 정치상황이 뚜렷하게 이런 '3-M cycle'을 따라가고 있다는 생각이다. 지난해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부터 어제 19대 총선 후보자 등록이 마무리될 때까지 5개월 동안 정치권과 유권자들의 인식 변화 과정이 그렇다.

10월의 보궐선거 전후 모습은 Movement 그 자체였다. 유권자로부터 시작된 욕구는 그대로 정치권을 흔들었고, 양쪽 모두에서 새로운 정치를 위한 변화의 움직임이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터져 나오는 유권자의 기대를 목격한 정치권은 비상대책이니 구조 변혁의 기치를 내걸고 성장을 위한 몸부림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오래가지 못했고 금세 Machine의 단계로 접어들었다. 정치권은 여야 할 것 없이 관성과 타성을 벗지 못한 채 기계적 행태를 반복하게 됐고, 유권자들의 의지도 늘 경험하던 정치권의 행태에 스스로 익숙해져 가기 시작했다. 비상대책이 전혀 비상한 과정과 결과를 보여주지 못했으며, 야권통합이라는 구조 변혁도 포장과 명칭만 전시하며 흘러가는 양상이 됐다. 변화에 대한 유권자들의 희망이나 관심도 기계적 대응에 머물렀다. 정치의 핵심인 총선을 앞두고 그 공천 과정이 '기계적 반복'의 모습으로 나타나면서 어느새 유권자들 가운데는 스스로 무관심층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벌써 Monument 단계로 들어선 지 오래된 듯하다.

불과 5개월 전 그렇게 애절했던 발아와 성장의 열정들이 이미 하나의 기억이나 유적처럼 흔적으로만 남아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언제 그랬냐는 듯 추억으로 넘겨놓고 있는 것은 정치권이나 유권자나 다르지 않다. 개혁과 변화의 수많은 약속들은 이미 기념비에 새겨놓은 문자처럼 흔적만 흐릿하게 남았다. 어제 마무리된 여야의 총선후보 공천과정만 보아도 Movement 당시의 다짐을 까맣게 잊어버린 모습이다. 가끔 그때의 모습을 잊지 않고 정상적인 모습을 보인 경우가 있었지만, 오히려 그것이 특이한 행동으로 평가 받고 있다.

기념비나 유적의 의미인 Monument에 '(당시 상황을)새로 생각나게 하는 것'이라는 뜻이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3-M'이 일련의 과정으로 끝나지 않고 '순환(cycle)'으로 이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Monument의 단계에 빠져 있다는 것은 새로운 Movement를 시작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4ㆍ11총선이 불과 20일도 채 남지 않았지만 그 동안의 경험으로 볼 때 새롭게 싹을 틔우고 그것을 성장시키기 위한 시간으로 부족하지 않다. 여야 정치권이 초심을 되새겨야 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유권자들이 앞서서 초심을 챙겨나가야 한다. 총선이 끝나면 다시 '기계적 현상'과 '잊혀진 기억'이 반복되겠지만 그때마다 새로운 '움직임과 싹트기'로 어김없이 연결시켜야 한다.

정병진 수석논설위원 bjju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