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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 "사장을 노동자가 뽑으면 안되나" 철학자, 주식회사를 사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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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 "사장을 노동자가 뽑으면 안되나" 철학자, 주식회사를 사유하다

입력
2012.03.23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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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은 누구의 것인가/김상봉 지음/꾸리에 발행ㆍ329쪽ㆍ1만5000원

1960년 경동산업으로 출발한 키친아트는 알려진 대로 숟가락이나 국자 같은 주방용품을 전문으로 생산하는 기업이다. 프레스 작업 중심이어서 일 하다가 손가락이 잘려나가는 산업재해가 많은, 한국의 열악한 노동 현실을 대변하는 이미지를 가진 기업이었다. 양식기로 제법 돈을 번 이 회사는 자동차 부품, 종이컵 제조 등으로 투자를 확장했다가 경영전략이나 재무관리 부재로 2000년에 법정관리에 들어가고 말았다. 파산 당시 빚만 1,000억원. 이 회사를 노동자들이 체불임금과 퇴직금, 위로금 등을 모아 76억원에 인수해 주식회사 키친아트로 새 출범시켰다. 노동자 기업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공동소유, 공동책임, 공동분배'를 사훈으로 내건 이 회사는 그 뒤 매출 700억원대의 탄탄한 기업으로 성장했고 해마다 주식 배당금 10%를 사회에 환원한다.

자본주의 기업의 소유와 경영 문제를 재검토한 김상봉 전남대 철학과 교수의 이 책을 한국 재벌기업의 1인 전횡 구조를 비판하거나 협동조합 같은 식의 노동자 경영 참여를 모색한 책으로 지레 짐작했다. 책의 앞부분에 키친아트 사례 같은 것이 나와서 더욱 그랬다. 하지만 저자가 노동자의 경영 참여를 검토한 뒤 강조하는 것은 그것이 협동조합처럼 노동자의 삶의 질 개선에 '필요'한 것이 아니라 '당위'라는 사실이다.

저자의 질문은 '경영자를 왜 노동자가 직접 선출하면 안 되는가'에서 출발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선거로 국민의 이해를 대변할 의원을 뽑고 대통령을 선출하듯, 기업의 구성원인 노동자가 경영자를 뽑아서 안 될 이유는 무엇인가.

문제의 핵심은 '소유권'이었다. 물건을 가진 사람이 그것을 이용할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당연하듯, 기업을 가진 사람이 회사를 경영하는 것은 마땅하다. 중요한 것은 지금 자본주의 사회를 지탱해가는 물적 토대라고 할 수 있는 주식회사에 이 같은 상식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주식회사는 주주의 자본금 납입으로 설립되지만 등기를 마침과 동시에 그 자체로 하나의 법적인 인격체가 된다. 노예사회가 아닌 이상 한 인간을 다른 인간이 소유할 수 없듯, 주식회사 역시 누구에게 소유되는 대상이 아니라 그 자체로 '주체'라는 것이다.

이를 법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이 주식회사의 소유주로 흔히 착각하는 주주의 유한 책임이다. 식당이 망하면 주인이 가게 인테리어며 임대를 위해 은행에서 빌린 대출금을 어떻게든 갚아야 한다. 하지만 주식회사는 망해도 주주가 그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주주는 기업이 잘 되면 주가 상승의 이익이나 배당금을 받고 못 되면 주가 하락에 따른 손실을 볼 뿐이다. 더구나 주주 경영권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유는 기업이 크면 클수록 주주의 다수가 주가를 통한 이익 실현에만 관심이 있지 실제 경영에는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저자의 말대로 주식회사가 '오늘날 우리의 삶을 가장 본질적으로 규정하는 지평'이라면, 그것이 '일종의 유기체이면서 구성원들이 서로를 도구로 활용하면서 동시에 목적으로 대접하고 다시 그들이 하나의 공동의 목적을 추구하는 통일성을 실현하는 조직'이 되어야 한다면, 이런 주주를 기업의 주인으로 믿고 그들에게 경영을 맡기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는 '생각하는 주주가 주식회사의 몸이라면 노동자는 활동하는 주체'라고 규정한다. 협동조합처럼 굳이 노동자가 주주가 되지 않더라도 주식회사의 경영권은 주체인 노동자가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자본의 사적 소유를 국가 소유로 전환하려는 마르크스의 기획에도 반대한다.

책에서 삼성을 대표 사례로 꼽아 신랄하게 고발하듯 미국식 주주자본주의에다 봉건적 의식에 사로 잡힌 재벌이 장악하고 있는 한국의 현실 앞에서 그의 주장은 언뜻 공허하게도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노동자가 기업의 주체가 되기 위해 '주식회사의 이사는 종업원 총회에서 선임'하고 주주와 함께 활동의 주체가 되기 위해 '주식회사의 감사는 주주 총회에서 선임한다'는 상법 개정을 최종 목표로 하면서도 저자는 당장 실현가능한 방법들을 제안한다. 우선 공기업 사장 선출권을 노동자들에게 위임하고 원칙적으로 법인이 운영하는 기관은 그 기관에 소속되어 일하는 종업원들이 기관장을 선출하도록 하는 것이다. 주식회사의 경우도 성격상 공익적인 회사에서는 노동자 경영권을 도입한다. 대표적인 기업으로 요즘 파업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언론사를 꼽았다. 기관투자가들이 주주권을 행사해 노동자 경영권 도입을 앞당기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한다. 노동자들의 유보된 임금이라고 할 수 있는 연기금이 어떤 기업의 최대주주라면 그것은 실질적으로 익명의 노동자들이 최대주주라는 말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독일에서 철학을 공부한 그가 아리스토텔레스며 칸트의 철학 이론과 법학, 경제학의 논리를 다양하게 인용해가며 펴는 이런 논리 전개에 실은 모델이 있었다. 베를린 필 같은 세계 수준의 교향악단들이다. 그 조직은 주식회사든, 재단법인이든 단원들이 통치하는 작은 공화국이라고 한다. 지휘자를 선출하는 것도 물론 단원들이다. 교향악단의 이윤을 창출하는 핵심적인 존재인 단원이 주체가 되는 이런 체제에 아무도 불만을 제기하지 않는다. 주식회사가 교향악단처럼 운영되면 안 될 까닭 역시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만약 주식회사가 이런 오케스트라가 될 수 있다면, 우리가 사는 세계의 진리가 가장 탁월하게 표현되고 실현되는 장소라면, 모든 주식회사가 오케스트라가 된다는 것은 이 세계에 넘쳐 흐르는 고통스런 신음소리가 아름다운 음악소리로 바뀐다는 것을 의미하는 일일 것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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