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과 출산이 늦어지고 이혼이 증가하는 이유를 고용사정의 변화로 설명하는 어느 독일 학자의 이론이 있다. 고용이 유연화되면서 경직적인 가족관계를 유지할 수 없게 됐다는 논리다. 복잡한 통계를 떠나 상식에 부합하는 통찰이다. 우리가 IMF 외환위기 이후 이혼이 급증하고 출산률이 급속하게 하락하는 원인을 상시적인 고용조정과 비정규직의 확산에서 찾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아슬아슬한 단기 고용계약에 매달려 있는 청년들 입장에서 결혼이나 출산과 같은 그야말로 취소하기 어려운 장기계약이 두려운 것이다.
대기업 정규직으로 잘 나가는 청년들이라고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니다. 이들은 반복되는 야근과 주말 특근으로 연애할 시간도 섹스를 즐길 여유도 없다고 불만이다. 워킹 맘의 직장생활이 힘든 것은 보육시설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예측할 수 없는 퇴근시간에 맞출 보육서비스가 없기 때문이다. 출산률이 낮고 30-40대 고학력 여성 고용률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보다 20% 포인트나 낮은 이유는 우리의 만연한 야근관행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고급서비스업종인 은행의 경우 연장근로수당은 한 달에 10시간 정도로 고정돼 있는데도 하루 평균 3시간 정도의 야근을 한다. 가장 큰 원인으로 과도한 성과경쟁이 지목됐다. 이런 노동시장의 문제를 그대로 둔 채 약간의 현금수당으로 출산을 유도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국민경제 차원의 근로시간 배분이 매우 불평등하고 비효율적이라는 사실은 우리의 고용률이 OECD 최저 수준인데 비해 평균 근로시간은 최장이라는 객관적 통계로도 뒷받침된다. 달리 말하면 일하는 사람만 죽어라 일하는 구조인 것이다. 청년실업과 비정규직이 넘쳐나지만 동시에 대기업 정규직의 장시간 근로는 세계 최고 수준인 것이다. 한 사람의 생애주기를 보더라도 불합리한 것은 마찬가지다. 25년 정도 정신없이 일하다가 50을 넘기면서 퇴직을 걱정해야하는 고용구조는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다. 지금 대부분의 베이비부머들이 이 처지에 몰려 있다. 이들은 은퇴 후 30년을 '쉬면서'지내야 할지 모른다.
이러한 저출산과 고용구조의 왜곡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개인으로나 경제 전체적으로 근로시간의 대대적인 재분배(워크셰어링)계획이 마련돼야 한다.
기본개념은 특정 시기와 특정 집단에 집중된 장시간근로를 고르게 펴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가늘고 길게 일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 첫 출발은 실근로시간을 전반적으로 단축해 개인생활을 정상화하는 것이다. 실근로시간 단축은 고용창출 효과도 있다. 지난 10년간 우리의 연간 평균근로시간은 2,193시간인데 이를 OECD 평균수준(1,749시간)으로 줄인다면 일자리를 190만개 만들 수 있다는 분석이 있다. 이 정도는 아니더라도 실근로시간 단축이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고용노동부도 최근 이런 점에 착안해 장시간근로 사업장에 대한 지도감독을 강화하고 있지만 장애요인도 만만치 않다. 우선 기업 입장에서 연장근로는 비용절감과 유연성 증대를 의미한다. 특히 경기변동에 따라 인력을 조정하지 않고 작업시간으로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은 큰 매력이 아닐 수 없다.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연장근로수당을 챙길 수 있다. 제조업의 경우 임금총액의 10%에 육박하고 생산직의 경우에는 그 이상이다. 이는 노사가 스스로 해결할 문제다. 다만 정부의 근로기준 행정에 따라 노사가 다른 선택을 하도록 유도할 수는 있다. 최근 주말특근을 연장근로에 포함하도록 하겠다는 방침이나 근로시간 규제의 예외업종을 대폭 축소하는 조치들이 좋은 예다.
공공부문의 솔선수범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공공부문이 나서서 야근을 줄이고 일·가정 양립의 모범을 보이는 것이다. 이를 위해 야근을 유혹하는 금전적 문화적 요인들을 하나씩 줄여나가 야근을 불편하게 할 필요가 있다.
최영기 경기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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