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그림책을 받은 아이들의 얼굴이 잊혀지지 않아요. 얼마나 환하던지 가슴이 뭉클하더라고요."
그림책을 만들어 제3세계에 보내는 재능기부 모임 '따뜻한 그림책'은 지난달 첫 결실을 맺었다. 아프리카 브룬디에 시범적으로 10여권의 그림책을 전한 것. 참가자 중 한 명인 동화작가 박소명(50·여)씨의 동시 '싱글싱글 미선이'를 원작으로 한 '싱글싱글 지슬렌'이라는 책이다. 그림책을 받고 세상 어떤 그림보다 더 예쁜 표정을 지은 아이들의 사진 한 장이 그간 참가자들의 노력을 씻어 내렸다. 박씨는 "돈이나 음식으로 줄 수 없는 꿈을 준 것 같아 행복했다"고 말했다.
'따뜻한 그림책'은 지난해 2월 "소외된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보내자"는 콘텐츠디자이너 정호원(25)씨의 제안으로 시작된 모임. 동화 작가,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편집자, 출판사 관계자 등 170여명이 동참했고 이중 10여명이 주축이 됐다.
"아프리카 아이들은 비가 오면 책이 젖을까 봐 품 속에 넣고 뛴다고 하더라고요. 그만큼 책이 귀한 곳에 우리의 정성이 전해질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뜻을 이루기 위해 지난해 동화작가가 기부한 동화 두 편을 그림책으로 만드는 연습을 하며 계획을 세웠다. 이후 첫 대상을 아프리카 내륙의 소국 브룬디의 아이들로 정했다. 세계에서 GDP가 가장 낮고 오랜 내전으로 아이들의 성장 환경이 척박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올 12월 그곳으로 이주할 계획인 참가자 남혜련(35·여)씨와 브룬디에 책을 보내는 활동을 해온 모임 '북스포브룬디'가 매개역할을 맡아 첫 번 째 따뜻한 그림책을 전달했다. 8월에는 성범죄율이 높은 현지상황을 감안, 성교육책을 1,000권 이상 보내고 연말에는 브룬디의 신화와 설화 그림책을 아이들에게 보낼 계획이다.
따뜻한 그림책이 검은 대륙에만 가는 것은 아니다. 이달 초 스리랑카 콜롬보의 한 고아원에 300여권의 '카메라 사용법' 그림책을 전했다. 카메라를 처음 만져보는 아이들에게 포근한 그림체로 "하늘, 나무, 엄마, 친구 등 너에게 아름다운 것들을 찍으라"고 가르쳐주는 내용. 1회용 카메라는 제3세계 아이들에게 카메라로 자신의 꿈을 찍게 하는 자원봉사 모임 '꿈꾸는 카메라'가 제공했다. 스리랑카 아이들이 답례로 보내준 꿈 그림들은 '따뜻한 그림책'의 다음 책에 삽입될 예정이다.
따뜻한 그림책은 제3세계의 더 많은 어린이들에게 꿈을 전하기 위해 기금마련을 포함, 다양한 사업도 계획하고 있다. 참가자 윤혜진(41ㆍ여)씨는 다음달 서울 목동에 차리는 자신의 카페에서 수익금을 이 모임에 기부하는 메뉴를 판매할 예정. 그림책을 애플리케이션, 연극 등으로 만드는 일도 준비 중이다.
10년간 어린이책 편집자로 일하다가 "좀더 가치 있게 살고 싶다"는 생각으로 2월에 직장을 그만두고 이 일에 뛰어든 오지숙(35ㆍ여)씨는 "'고객'이 아닌 그림책이 꼭 필요한 아이들을 생각하며 책을 만들다 보니 월급을 받을 때보다 더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박우진기자 panoram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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