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발전소는 정부가 가장 공을 들이는 전략수출분야.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로부터 원전수주를 위해 직접 자원외교에 나섰고, 그 결과 해외건설 사상 최대금액인 총 200억 달러짜리 한국형 원전 1~4호기를 수출하는 데 성공했다. 이 여세를 몰아 터키 베트남과도 원전수주협상을 진행하고 있으며, 정부는 원전기술뿐 아니라 원전인력까지 함께 수출해 고급 해외일자리를 만든다는 구상까지 하고 있다.
하지만 고리원전 1호기 사고를 계기로 우리나라는 원전수출국이 되기 위한 첫째 조건인 대외신뢰도에도 금이 갈 위기에 처했다. 원전은 무엇보다 안전관리가 핵심인데, 고리원전 사고를 통해 허술한 안전관리와 도덕적 해이까지 확인됐기 때문에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은 향후 미국 프랑스 캐나다 러시아 등과의 수주경쟁에서 흠집이 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당장 터키원전 수주협상이 문제다. 2009년 이후 중단됐던 양국의 원전건설 수주협상은 지난달 터키 측의 적극적 참여요청으로 다시 물꼬를 트는 등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는데, 이번 사고는 분명 악재가 아닐 수 없다. 터키원전 수주를 놓고 경쟁하는 나라들이 한국형 원전의 안전성과 관리를 문제 삼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원전건설에 참여하는 한 국내 대형건설업체 관계자는 "원전사고를 해외 발주처들도 다 알고 있어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라면서도 "원전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운영상의 단순실수라는 점을 설득하고 있다"고 전했다.
일각에선 다음주 열리는 '2012 서울 핵안보정상회의(26일~27일)'에도 악영향을 미칠까 우려하고 있다. 정부는 이번 회의에서 핵안보와 핵안전 등을 중요 의제로 다룰 예정. 핵안보가 악의적 동기에 의한 핵테러 방지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라면, 핵안전은 자연재해나 기술적 고장 등에 따른 방사능 위험으로부터 국민과 환경을 보호한다는 개념이다.
정부는 이번 회의를 통해 우리나라가 평화적인 원자력 이용의 모범국가이자 원전 수출국이라는 점을 부각시키겠다는 복안이었는데, 이번 원전사고가 이 핵안전 문제와 직결되다 보니 난처한 상황에 빠지게 됐다. 이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 기간 중 한국형 원전을 수출했거나 협상을 추진 중인 UAE, 터키 정상들과 회담을 가질 예정인데 결과적으로 이번 사고는 대통령과 국가위상에까지 누가 된 셈이다.
한 원전 전문가는 "중요한 길목에서 탄력을 받아야 할 원전수출이 뜻하지 않은 암초를 만났다"며 "원전은 워낙 예민한 분야라 작은 악재라도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종한기자 tell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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