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맨들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대우그룹이 워크아웃에 들어가 해체된 지 13년만이다.
대우맨들은 그룹 해체 이후 빚으로 문어발 식 확장만 거듭하다 외환 위기를 불러왔고, 결국 국민세금(공적자금)까지 축을 낸 '죄인'으로 살아왔다. 하지만 대우맨들은 "우리도 할 말이 있다"며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대우의 역사를 재평가해달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옛 대우그룹 출신 모임인 대우세계경영연구회는 그룹 창립 45주년(22일)을 맞아 란 책을 펴냈다. 옛 대우계열사 CEO와 임원 등 33명이 집필한 이 책은 1967년 대우실업 설립 때부터 대우그룹 해체 때까지 세계시장을 무대로 대우가 보여줬던 활약상과 그 뒷얘기들이 담겨 있다.
이 책이 기획된 건 2년 전. '세계 경영'으로 표현되는 대우의 진취적 정신을 세상에 알리고, 특히 젊은 세대에게 조금이라도 도전 정신을 전해주자는 '소박한' 뜻에서 시작했다.
하지만 책이 마무리되던 시점에 이르러, 분위기는 바뀌었다. 더 이상 대우에 대한 비난과 멸시를 참을 수 없으며, 이젠 할 말을 해야겠다는 분위기가 대우맨들 사이에 팽배해진 것이다.
대우맨들을 들끓게 한 건 외환위기 직후 구조조정작업을 총괄했던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당시 금융감독위원장)였다. 이 전 부총리는 현재 한 일간지에 연재하고 있는 회고록에서 '대우가 구조조정에 소극적이었던 탓에 시장의 신뢰를 잃었으며 이로 인해 워크아웃은 불가피했다'는 취지로 언급했는데, 이를 본 대우출신들이 "우리도 이제 할 말은 해야겠다"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던 것이다. 연구회 관계자는 "이 전 부총리의 언급이 나오고 나서 책 서문까지 다시 쓰게 됐다"면서 "수 많은 대우 임직원들에 대한 비난과 멸시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뜻을 담아야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연구회장을 맡고 있는 장병주 전 ㈜대우사장은 "대우 해체로 국가와 국민에 폐를 끼친 것 자체가 죄송해서 그 동안 어떤 해명도 하지 않았고 책에도 그와 관련 얘기는 최대한 줄였다"며 "하지만 당시 정책을 잘못 입안하고 집행했던 이들이 사과도 없이 우리를 죄인 취급하는 것은 반드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고 봤다"고 말했다.
장 전 사장은 서문에서 "그 당국자(이 전 부총리를 지칭)는 대우가 구조조정에 소극적이어서 시장신뢰를 잃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시장 신뢰를 잃게 만든 건 오히려 정부의 개입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다른 재벌그룹과 달리 해외 사업이 많았던 특수성을 인정하지 않고, 정부가 모든 금융을 막아버림으로써 몰락의 길로 이르게 됐다는 주장이다.
사실 대우가 우리나라 세계시장 개척의 1등 공신인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 특히 남미 동유럽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등 미개척시장에 처음으로 '메이드 인 코리아'의 깃발을 세웠고, 그 결실이 지금 나타나고 있는 건 이론의 여지가 없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옛 대우의 한 고위임원은 "대우가 무조건 잘 했다는 것은 아니다. 더 이상 한국경제의 죄인으로 매도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 이젠 공과를 제대로 평가 받고 싶다"고 말했다.
옛 대우맨들은 22일 저녁 서울 종로구 부암동 AW컨벤션센터에서 대우창립 45주년 기념식을 갖고 출간 행사도 치를 예정이다. 이 행사에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도 참석한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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