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희 통합진보당 공동대표의 여론조사 조작 파문으로 야권연대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다. 민주당은 이 대표가 사퇴하지 않는 한 해법이 없다는 입장인 반면 이 대표는 재경선을 주장하며 정면돌파 의지를 보이고 있어서 자칫 관악을이 야권연대 파국의 진원지가 될 수도 있다.
21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의 분위기는 험악했다. 한 최고위원이 이 대표의 여론조사 조작 파문을 거론하며 "한나라당이 차떼기당이면 통합진보당은 폰떼기당"이라고 불을 질렀다. 다른 최고위원도 "도덕성의 화신처럼 행동하던 이 대표의 불법 행위여서 그냥 넘어갈 수 없다"고 핏대를 세웠다. 이 대표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이 대표 사퇴를 촉구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하지만 야권연대를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분위기는 다소 가라앉았다. 재경선 요청을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공개적으로 사퇴를 요구하는 것은 야권연대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사퇴를 촉구했다가 통합진보당이 야권연대 파국의 책임을 민주당에 떠넘길 경우 난처해진다"는 현실론도 대두됐다. 결국 지도부는 엄중한 책임을 묻는 방식으로 사퇴를 압박하는 절충론을 택했다.
민주당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이 대표는 쉽게 후보 사퇴를 하지는 않았다. 이 대표가 사퇴하는 순간 자신의 정치 생명뿐 아니라 통합진보당도 엄청난 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양당이 팽팽히 맞설 경우 야권연대도 치명상을 입는다는 점이다. 더구나 후보 등록일(22, 23일)이 코앞에 닥쳐 단일후보 교통정리가 어려울 수도 있다. 당장 민주당이 김희철 의원과 통합 경선에서 3표 차이로 패배한 경기 안산 단원갑의 백혜련 변호사에게 공천장을 준다는 방침이어서 야권의 후보 난립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상황이 꼬이자 통합진보당 지도부는 이날 밤 긴급 모임을 갖고 이 대표의 사퇴 여부와 양당 균열 해소 방안 등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이 대표가 금명간 사퇴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도 나왔다.
양당의 인식 차이가 법정 다툼으로 비화할 수도 있다. 탈락한 민주당 후보들은 통합진보당 캠프에서 여론조사기관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넘겨받아 여론조사 조작에 활용했다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 반면 통합진보당 측은 "여론조사기관의 전화를 받은 당원들이 40대라고 밝히면 전화가 끊어졌기 때문에 이 같은 정보들을 토대로 여론조사 참여를 독려한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두 당이 여론조사 조작 및 금품선거 의혹을 둘러싸고 갈등하는 가운데 괴문자 소동까지 벌어졌다. 통합진보당 천호선 대변인은 이날 '통합진보당! 야권단일화 여론조사조작! 천호선은 책임지고 후보 사퇴해야 한다'는 괴문자 메시지를 공개한 뒤 "명백한 흑색선전"이라고 주장하면서 법적 대응을 경고했다.
김정곤기자 jk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