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3월 23일 발사된 '난 알아요'라는 로켓은 한국 대중문화계를 뒤흔든 혁명의 신호탄이었다. 서태지와 아이들 1집은 한 달 만에 40만장이 팔리며 총 170만장의 판매고를 올렸고 '하여가'가 수록된 2집은 210만장이 팔렸다. 힙합, 댄스, 헤비메탈, 국악을 넘나드는 음악적 실험은 타성에 젖은 가요계를 흔들어 깨웠다. 96년 그룹 해체 및 은퇴 선언과 요란했던 98년 솔로 컴백, 그리고 지난해 알려진 비밀 결혼 및 이혼에 이르기까지 '문화대통령' 서태지는 아이돌이자 아티스트, 혁명가이자 전략가, 시대의 아이콘이자 기묘한 은둔자의 모습으로 대중에 각인됐다. 문화계 전반에서 주역으로 성장한 '서태지 키드'들의 입을 통해 데뷔 20돌을 맞은 서태지가 남긴 것들을 짚어봤다.
"신경숙의 의 주인공이 70년대엔 라디오로 센드페블즈의 '나 어떡해'를 듣는데 시간이 흘러 90년대엔 뭘 듣는지 아세요?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예요."
소설가 이신조(38)에게 서태지는 '나'를 각인시킨 존재였다. 스물다섯에 등단한 그는 386세대가 지배하던 문단에 등장한 사실상 첫 번째 '서태지 키드'였다. 20년 전 고3 자율학습 시간에 워크맨으로 서태지와 아이들 1집을 듣다 "머리가 두 쪽으로 쪼개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던 순간을 그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배우 류현경(29)은 초등학교 3학년 때 TV에서 '하여가'의 뮤직 드라마를 본 뒤 아역배우가 돼 서태지를 만나겠다는 야무진 목표를 세웠다. 이듬해 연기학원에 등록한 그는 96년 김혜수 주연 드라마 '곰탕'으로 데뷔했다. 류현경은 "막상 데뷔하고 나선 그 목표를 잊었지만 그 뮤직비디오가 아니었으면 연기를 하겠단 생각을 했을까 싶다"며 웃었다.
캐나다에서 중학교를 다니던 가수 타블로(32)에게 서태지와 아이들은 '한국인의 자부심' 그 자체였다. "한국 음악이 이렇게 좋다고 자신 있게 보여줄 수 있는 그룹이었죠." 서태지와 그 팬들을 통해 음악의 힘을 느꼈다는 그는 "그래서 음악으로 뭔가를 하려고 생각하게 됐고 아직까지 음악을 좋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태지 키드에게 서태지와 아이들은 음악과 패션을 넘어 가치관으로 파고 들었다. '교실 이데아''시대유감' 같은 노래는 저항의 상징이다. KBS '1박2일' 조연출로 이름을 알린 신효정(31) SBS PD는 "서태지가 어떻게 하라고 말한 적은 없다"며 "화두만 던지고 스스로 판단해서 행동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모두들 실패하면 안 된다고 말할 때 바닥까지 떨어져도 다시 일어서면 된다고 말한 서태지는 길잡이가 아니라 깨우침이었다.
서태지는 방송사와 기획사 중심으로 돌아가던 대중음악산업의 관습을 흔들었다. 에픽하이로 활동하던 때 독립 레이블에서 앨범을 내기도 했던 타블로는 "서태지는 규칙이나 공식을 깨는 것이 더 재미있고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준 사람"이라고 했다. 서태지를 따라 팬들도 새로운 팬덤 문화를 만들어냈다. 팬들은 언론의 잘못된 보도나 저작권 문제 등 '부조리'에 조직적으로 맞섰다. 신 PD는 "공평한 입장에서 자발적이고 합리적으로 활동하는 것"을 서태지 팬덤의 특징으로 꼽았다.
배우 이준기(30)는 2008년 MBC 서태지 컴백 스페셜에 자신의 우상과 함께 출연하며 '서태지 키드'임을 공식 선언했다. 그는 서태지에게서 세상을 보는 눈을 선물 받았다고 했다. "세상을 보는 눈이 누구보다 넓고 섬세한 서태지가 나만의 꿈을 만들고 도전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줬죠." 콰르텟엑스의 바이올리니스트 조윤범(36)씨는 "클래식을 하는 게 예술이 아니라 도전하는 것이 예술"이라며 "클래식 음악가 중에서도 현실과 타협하는 사람이 많은데 서태지는 관습을 타파하고 혁신하려고 했던 예술가"라고 예찬했다.
스무 해가 지나 서태지는 잡히지 않는 4차원의 세계로 넘어가 버렸다. 류현경은 "서태지와 대중 사이에 막이 생긴 것 같은데 그걸 깨고 소통을 이뤘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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